충무로로 돌아온 봉준호 “신작 ‘기생충’ 가장 한국적인 뉘앙스로 가득 찬 영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2일 1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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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50)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가족의 삶을 비춘다. 똑같은 4인 가족이지만 이들의 공간은 극과 극. 구성원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 네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반지하. 반면 글로벌 IT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 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봉 감독은 마주칠 기회조차 없을 것 같은 두 가족의 접점을 ‘과외’에서 찾았다. 기택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박 사장 집에서 고액 과외를 할 기회를 얻는다. 거기서 젊고 아름다운 안주인 연교(조여정)을 만나게 되는데….

22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봉 감독은 “경계선이 구획된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는 암묵적으로 나눠진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유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동선이 다르다”며 “두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영화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는 2013년 지인과 대화하던 도중에 양 극단의 두 가족을 떠올렸다고. ‘기생충’의 원래 제목은 ‘데칼코마니’였다고 한다.

‘마더’(2009년) 이후 10년 만에 충무로로 돌아온 그의 작품답게, ‘기생충’은 “가장 한국적인 뉘앙스와 디테일로 가득 차 있는 영화”다. ‘옥자’(2017년)에 이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봉 감독은 “외국 관객들은 100% 이해하지 못할 디테일이 포진해있다. 한국 개봉이 기다려지는 이유”라면서도 “빈부의 차이는 전 세계의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 중 엄마가 없거나 엄마만 존재하던 ‘괴물’(2006년)과 ‘마더’나, 할아버지와 손녀만 등장하는 ‘옥자’와 다르게, ‘기생충’은 전형적인 가족이 등장하는 그의 첫 영화이기도 하다. 많은 대사를 통해 ‘설국열차’(2013년)와 ‘옥자’처럼 계급과 계층 갈등을 그리면서도 가족 구성원의 삶 속에 담긴 희비를 담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가족들”에게 선악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배우는 역시 송강호. ‘살인의 추억’(2002년)부터 4편의 영화를 함께한 봉 감독의 페르소나다.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연체동물” 같은 적응력을 지닌 기택을 통해 소시민 연기에서 빛을 발하는 그의 장점을 살렸다.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받아 봤을 때 느낌과 비슷했다. 한국 영화의 진화라 할 만하다”고 단언했다. 봉 감독은 “정신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영화계의 메시나 호날두 같은 존재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규정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옥자’에서 비정규직 트럭운전사 역할을 맡았던 배우 최우식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본격적으로 ‘봉의 남자’가 된 모양새. 과외를 통해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기우는 팍팍한 청년 세대의 현실을 대변한다. 봉 감독은 “우리 시대 젊은이의 모습을 품고 있다. 유연하지만 기묘하게 측은지심을 자아내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옥자’ 촬영 뒤 몸을 만들겠다는 그에게 “마른 체형을 유지하라”는 귀띔을 했다고 한다.

김상만 미술감독이 제작한 균형 잡힌 구도와 정제된 색체, 인물들의 눈을 가린 기묘한 포스터처럼, 제목 ‘기생충’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봉 감독은 “학창 시절 ‘님의 침묵’을 읽고 ‘님’의 의미를 생각해보듯, 보고 나면 ‘기생충’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5월 국내 개봉. 15세 관람가.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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