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의 성적 때문에 몸 망가뜨리면 안되죠” ‘마라톤 부자’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5일 2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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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룡 한국전력 마라톤 감독.
김재룡 한국전력 마라톤 감독.
“동아마라톤은 모든 선수들에게 ‘혼(魂)’과 같은 대상이었습니다. 이 대회 출전을 위해 힘든 겨울 훈련을 버텼죠. 동아마라톤이 있어 황영조, 이봉주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김재룡(51) 한국전력 마라톤 감독이자 한국육상연맹 마라톤위원장은 국내 코스 최초로 2시간10분벽을 깬 주인공이다. 처음 출전한 1987년 동아마라톤에서 4위를 했던 김 감독은 1991년 황영조(47)를 제치고 우승한데 이어 1992년 2시간9분30초의 당시 국내 코스 최고기록으로 동아마라톤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 마라톤 사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높은 순위(4위·1993년 슈투트가르트)를 기록한 선수도 그였다.

김 감독은 최근 둘째 아들 영훈 군(16)을 일본 나가사키 친제(鎭西)고에 입학시켰다. 지난달 열린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8분22초의 기록으로 일본 1위(전체 8위)를 차지한 이노우에 히로토(24)를 배출한 학교다.

김 감독이 아직은 어린 아들을 유학 보낸 것은 오랫동안 지도자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아서다. 그는 “한국은 중학교 때부터 별과 달을 보면서 운동을 한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트랙을 돈다. 눈은 떴지만 근육은 자고 있는 시간이다. 운동이 힘드니 오전에만 받는 수업 시간에도 졸기 일쑤다. 일본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 아침 훈련은 30분 정도 가볍게 달리는 게 전부더라. 지난해 지인의 도움을 받아 현지 학교를 둘러보고 ‘이거구나’ 싶어 결심 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훈련 강도는 낮아도 지금의 일본 마라톤은 한국보다 몇 수 위다. 아시아기록(2시간6분16초)도 일본인 다카오카 도시나리가 세운 것이다.

애초 김 감독은 자식들에게 운동, 특히 육상을 시킬 생각이 없었다.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은 달리기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야구, 농구, 럭비부가 있는 중학교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했는데 1학년 때 교내 단축마라톤에서 운동부 선수들과 함께 뛰어 3위를 했어요. 그래도 운동은 안 시키려 했는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한국 선수들이 뛰는 걸 보더니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주위에서 ‘자식이 소질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마저 육상을 안 시키면 어떡하느냐’는 말을 듣던 터라 마음을 바꿔 체육중학교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영훈 군의 현재 롤 모델은 ‘공무원 마라토너’로 유명한 일본의 가와우치 유키(30)다. 그는 엘리트 선수가 아닌데도 2시간8분14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영훈 군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육상을 접하면서 마라토너의 꿈을 가지게 됐다. 아버지 말씀대로 공부도, 운동도 잘 하고 싶다. 달리는 게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풀코스를 뛰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스피드와 기본기를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유다. 김 감독은 “눈앞의 성적 때문에 몸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 그렇다고 한 얘기를 또 하자니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아예 영훈이를 ‘실험모델’로 삼는 것이다(웃음). 아들이 마라토너로 성공하면 내 주장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은 알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체조건도, 의지도, 열정도 그 나이 때의 자신보다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들에게는 좋은 운동 환경을 만들어 주는 아버지가 있다.

“영훈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풀코스를 뛰게 되면 그 첫 무대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대회가 될 겁니다. 언젠가 ‘국내 첫 동아마라톤 부자(父子) 우승’이 이뤄지는 꿈, 생각만 해도 뿌듯합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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