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새로 시작되는 美日 밀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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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이달 11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의 야외 공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한 투자자가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3장은 참 인상적이다.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자축하던 만찬장 분위기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긴급 보고에 곧바로 흥이 깨졌다. 양국 관계자들은 스마트폰 불빛을 비춰 가며 보고서를 읽고 논의했고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했다. 만찬에 초대된 손님과 종업원들은 평생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이 장면들을 모두 지켜봤다.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이다. 만찬 도중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먼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그 옆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은 동맹인 일본을 100% 지지한다”고 거들었다. 몇 장면만으로도 트럼프 시대 미일 관계가 어떠할지를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베는 ‘조공 외교’라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트럼프의 비위를 맞췄다. 4500억 달러(약 517조5000억 원)를 투자해 미국 내 하이테크 일자리 70만 개를 만드는 ‘미일 성장·고용 이니셔티브’라는 선물 보따리도 준비했고,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방안도 출발 전에 논의했다. 또 트럼프의 생각을 읽기 위해 그의 저서 번역본을 미리 완독했다고 한다.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 트럼프의 정책을 비판하는 다른 동맹국 정상들과는 달리 아베는 트럼프의 기분을 언짢게 할 말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두 사람의 ‘케미’(사람 사이의 화학반응)는 단기간 내 급상승했다. 트럼프는 아베와 2박 3일 동안 4차례 식사하고 27홀의 골프 라운딩을 함께 하는 등 정성껏 환대했다. 아베가 지난 4년여 동안 쌓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인간관계보다 취임 한 달 된 트럼프와의 친분이 이미 더 두텁다는 평가도 나온다.

덕분에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일본에 대해 입버릇처럼 말했던 ‘환율조작국’, ‘안보 무임승차국’이라는 비판은 쏙 들어갔다. 자세를 낮춘 건 분명 아베였지만 미일 정상회담의 진정한 승자는 트럼프가 아니라 아베라는 평가(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 내 반응도 뜨겁다. 요미우리신문이 20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베 내각 지지율은 66%로 3주 전 조사 때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미일 관계에 대해 기대보다 불안이 크다’는 응답도 크게 줄었다(70%→45%).

첫 단추를 잘 끼웠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꿈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무역적자 해소, 해외로 나간 일자리 되찾기 등 난제를 풀어야 한다. 중국 일본 등이 협조하지 않는 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갈등의 불씨가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

트럼프는 아베에게 “현안이 없더라도 국제회의에서 15분만이라도 회담하자. 항상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당신과의 회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5월엔 이탈리아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11월엔 베트남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트럼프의 연내 일본 답방도 예정돼 있다.

트럼프와 아베의 브로맨스(남자 간 친밀한 관계)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2000년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밀월에 버금가는 관계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대 어떤 한국 정부가 미국과 밀월 관계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미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는 판에 박힌 미국 측 답변에 만족하기에는 한반도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이 일본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대미외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미일 정상회담#북한 탄도미사일#아베 신조#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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