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도움이 필요하다면…” 우간다에서 수학 가르치는 ‘평생 현역 교육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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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김순기 전북대 명예교수

김순기 교수는 팔순을 앞둔 지금도 수학 강의가 필요하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평생 현역 교육자’다. 김 교수가 우간다의 한 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순기 교수는 팔순을 앞둔 지금도 수학 강의가 필요하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평생 현역 교육자’다. 김 교수가 우간다의 한 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우간다. 우리에겐 과거 독재자 이디 아민이나 이스라엘 특공대의 엔테베 공항 기습 사건 정도로 알려진 나라다. 우간다는 아프리카 중동부 적도 아래 위치한 내륙 국가. 면적은 한반도보다 조금 크고 아프리카의 젖줄로 불리는 나일 강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남한의 절반보다 큰 빅토리아 호수 등 크고 작은 호수가 많아 ‘아프리카의 오아시스’ ‘녹색의 나라’로 불린다. 그러나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처럼 과거 영국의 식민지 유산에 장기 독재의 흔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최빈국이다.

 이곳 대학에서 팔순이 다 된 나이에 수학을 가르치는 한국인이 있다. 그는 지금도 ‘수학이 어렵다’ ‘수학 때문에 인생이 안 풀린다’고 하는 학생이 있으면 어디라도 찾아가 직접 가르쳐야 직성이 풀리는 ‘50년 차 현역 교육자’다. 그것도 모두 무료다. 우간다 서부 포트포털 시의 시립대학인 MMU(Mountains of the Moon University) 수학과 김순기 교수(78)가 바로 그다.

김순기 교수 부인은 AIDS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우간다는 어린이의 5.4%가 AIDS에 감염돼 있다. 김순기 교수 제공
김순기 교수 부인은 AIDS고아원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우간다는 어린이의 5.4%가 AIDS에 감염돼 있다. 김순기 교수 제공
○ 평생 현역 교육자


 김 교수는 2004년 전북대 교수를 정년퇴임했다. 1979년 전산통계학과 설립 교수로 부임한 뒤 25년 동안 전북대 정보전산원장, 자연과학대학장, 정보과학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도 대학에서 선형대수학과 통계학을 가르쳤다.

 2013년 몽골을 거쳐 우간다로 갔다. 수도 캄팔라에서 300km 거리인 쿠미(KUMI)대에서 가르치다 2014년부터 포트포털 시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나이 먹은 사람이 뭘 할까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현지인 동료 교수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길까 봐 경계했다. 미분방정식부터 수치해석, 통계학 전 분야를 가르치고 컴퓨터 강의까지 맡으면서 그를 보는 눈이 점차 달라졌다. 많을 때는 다섯 강좌를 맡기도 했다. 현지인 교수들은 박사 학위는커녕 대부분 석사 과정에 다니면서 학부생을 가르치는 수준이었다.

 부족한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학생들이 타고 다닐 자전거부터 컴퓨터 등 교보재도 모자랐다. 최근에는 대학 안에 응용수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제대로 된 대학이 되려면 공대가 있어야 하고, 공대 설립을 위해서는 응용수학이 필요하다고 설득해 받아들여졌다.

 숙식은 학교 근처에 방 1칸, 주방 1칸짜리 집을 월세로 얻어 부인과 둘이 산다. 보수는 없다. 자신도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교보재도 사준다. 한국에서 된장, 고추장까지 가져다 먹으니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고 국내 교원연금이 나오니 그럭저럭 살 만하다.

 김 교수는 우간다 학생 1명을 전북대 동물학과에 보내 석사 과정을 마치도록 도왔다. 지난해에는 같은 과에서 근무하던 우간다인 동료 교수를 정부장학금으로 전북대 통계학과에 보내 박사 과정에 다니도록 하고 있다. 

 우간다는 풍부한 수자원으로 농업과 축산업이 유망하다. 올 5월에는 전북대 이남호 총장이 우간다 국립대인 마케레레대 농대와 양해각서(MOU)를 맺기 위해 현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우리의 새마을운동이 전파돼 18일 강원 평창군에서 열린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에서 혁신 사례로 발표되기도 했다. 

○밖으로 눈 돌리면 도움 필요한 곳 많아

 그는 원래 고교 수학 교사였다. 전남 담양 출신인 그는 서울대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과 경기 지역 고등학교에서 13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수학 교사 시절 당시 예비고사와 명문대 본고사 수학 문제를 잘 찍어내 ‘족집게 교사’로 불렸다. 서울의 한 사립고에서 수학을 가르칠 때 서울대에 20명 넘게 합격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학교는 그가 가르치기 전 잘해야 한두 명쯤 서울대에 보내던 학교였다. 2005년에는 고교 수학 참고서인 ‘패턴수학’(교우사·4권)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비법은 핵심 원리 가르치기와 일본 수학 참고서 연구하기였다. 또 하나는 학생들이 익힌 문제를 직접 친구들에게 가르쳐 보도록 하는 것이다.

“저는 지금도 가르치는 게 즐거워요. 아이들을 보면 사랑스럽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전북대 교수 시절에도 방학이 되면 교직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무료 수학 특강을 했고 중고교를 돌며 수학을 알기 쉽게 가르쳤다. 우간다에서도 교민 자녀와 중고교 교사들에게도 수학을 가르친다. 한국에 잠깐 다니러 온 사이에도 수학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는 학교나 학생이 찾으면 어디라도 달려간다.

 그는 중고교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교사로서도 가장 ‘가르칠 맛이 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학은 핵심 원리를 이해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교사들이 문제풀이보다는 교과서에 나오는 원리 중심으로 기초를 잘 다져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 수학이 시험용 변별력 위주로 흐르다 보니 문제를 지나치게 비틀고 이 때문에 아이들도 수학에 흥미를 잃게 된다고 본다. 

 고교 교사 시절 그는 어려운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먹이고 재우면서 수학을 가르쳤다. 그 학생들이 지금 기업경영자나 교수가 돼 찾아오곤 한다.

 그는 평생 현역 교육자이면서 평생 배우는 학생이기도 하다. 국내에 들어오면 틈나는 대로 KAIST 교수가 된 옛 제자 등을 찾아다니며 수학과 컴퓨터를 배운다. 지난해에는 전북대에서 물리학을 청강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가르칠 때 필요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트렌드를 익혀야 하고 머리가 녹슬지 않기 위해서는 책을 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재도 온라인을 통해 미국의 대학에서 신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아직 건강하고 능력 있는 젊은(?) 은퇴자들에게 눈을 밖으로 돌려 볼 것을 권한다.

 자신의 전공을 가진 은퇴 교수끼리 협동조합 형태의 팀을 꾸려 함께 일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받은 게 너무 많습니다. 제 위치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가진 지식을 나누는 것이지요. 꼭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밖에 나가 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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