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 작가 “그림에 땀의 증거를 담고 싶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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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 황재형 작가 태백 작업실을 찾아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재형 작가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바라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평범한 가치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몇 년 전 그린 백두대간 풍경에서 ‘산의 기운을 가린 형태’를 걷어내는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태백=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재형 작가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바라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평범한 가치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몇 년 전 그린 백두대간 풍경에서 ‘산의 기운을 가린 형태’를 걷어내는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태백=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현관 옆쪽 벽면 높은 곳에 나무 지게를 하나 걸어 놓았다. 강원 태백시 황재형 작가(64)의 작업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등이 공동 주최하고 박수근미술관이 주관해 올해 제정된 박수근미술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황 작가가 1980년대 중반에 만든 설치 작품이다. 오랜 세월 이곳 탄광 노동자들에게 식수를 길어 나르다 버려진 물지게의 잔해를 모아 화석처럼 고정했다. 21일 오전 만난 그는 “시간이 쌓여 붙은 흔적이 오롯한 사물은 그것만으로 잘 빚어진 작품”이라고 했다.

“태백에 산 지 이제 33년째다. 나를 두고 ‘탄광촌에서 광부 그리는 화가’라고 하지만 나는 인간 삶의 풍경이 풍성하게 드러난 공간을 찾아 헤매다 인연을 얻어 이곳으로 왔을 뿐이다.”

박수근미술상 심사위원단은 황 작가를 수상자로 선정하며 ‘관찰자의 그림이 아닌, 삶과 일치하는 예술 작업을 견지해 온 흔치 않은 작가’라 평했다. 그의 작업실 가구는 20년 전 서해 바닷가를 떠돌다 마주한 폐선에서 주워온 목재를 깎아 만든 것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이야기한 양졸(養拙·질박함을 기르다)의 가치를 좇아 왔다. 박수근 선생과 내 작품의 가치관이 닿는 지점이라 본다”는 그의 말이 사실임을, 작업 공간 곳곳의 흔적이 증명한다.

황재형이라는 이름을 처음 화단에 알린 작품은 29세 때인 1981년 그린 유채화 ‘황지330’(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다. 소재로 삼은 낡은 작업복은 태백 황지탄광에서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 김봉춘 씨의 유품. ‘황지330’은 옷에 붙은 번호표였다.

“대학 시절 강원도 탄광촌을 돌아다니다가 김 씨를 갱에서 만났다. 나는 책에 나오지 않는 노동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려 한 풋내기였다. 어느 날 김 씨가 집으로 식사 초대를 했다. 마누라가 곗돈 들고 도망가 혼자 살던 이라 직접 밥상을 차려 왔는데, 라면과 김치 찌꺼기가 상 곳곳에 붙어 썩어 있었다. 구역질 참으며 대충 앉았다 돌아오는 길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글로 읽어 얻은 관념과 실체의 괴리가 몹시 부끄러웠다.”

황재형 작가의 출세작인 유채화 ‘황지330’(1981년). 강원 태백시의 한 탄광에서 사고로 숨진 광부가 남긴 작업복을 그렸다. 황재형 작가 제공
황재형 작가의 출세작인 유채화 ‘황지330’(1981년). 강원 태백시의 한 탄광에서 사고로 숨진 광부가 남긴 작업복을 그렸다. 황재형 작가 제공
이듬해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김 씨는 작업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의 옷을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 세상의 주목을 얻게 된 황 작가는 양심의 가책을 견디기 어려웠다. ‘고작 구경꾼 주제에 무슨 예술을 하겠나’ 싶었던 것. 그려낸 작품의 무게를 책임질 방도를 고민하던 그는 생활 터전을 탄광촌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아들이 두 살 때였다. 그림으로 생계를 꾸릴 처지일 리 없었다. 광부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대학 나온 이가 갱에 들어오려 하는 게 의심스럽다’고 면박당한 채 쫓겨났다. 그래서 큰 국영 광업소는 못 들어가고 민영 광산만 떠돌며 현장에서 일을 배웠다. ‘손가락 흰 녀석이 사장 첩자 짓 하러 들어왔다’고 오해받아 몰매 맞을 위기도 겪었다. ‘재봉사였는데 공장장 마누라와 눈 맞아 여기로 도망 온 것’이라고 둘러대 겨우 모면했다. 하하.”

전남 보성 출신인 황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종일 그림만 그렸다. 그림을 업(業)으로 삼은 뒤에도 꼬마 때처럼 외곬으로 미술계와 소통 없이 묵묵히 붓만 움직이며 살아왔다.

“그림에 ‘땀의 증거’를 담고 싶었다. 인간 삶의 모든 조화는 땀에서 비롯한다.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다. 작게는 미술계, 크게는 현대사회가 그 믿음에 어긋나 있다고 판단해 떠나왔다. 어떤 작가는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담는다. 나는 그런 그림을 그린 적이 없다. 내 그림은, 땀이 자득(自得·스스로 얻기)한 흔적일 따름이다.”

태백=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황재형 작가#박수근미술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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