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직접’ 보고 느끼고 사랑하라, 행복을 원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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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이펙트/수전 핀커 지음·우진하 옮김/516쪽·2만1000원·21세기북스

온라인 친구 많아도 외로운 현대인
‘운동하듯’ 인간관계 맺기에 힘써야 건강하고 풍성한 삶 향유할 수 있어

온라인에서 만나 결혼한 영국인 커플 데이비드 폴러드와 에이미 테일러의 디지털 아바타. 하지만 가상의 관계와 실제 관계 속에서 방황한 이들은 결국 이혼했다. 온라인 관계에 몰두해 실제 관계를 소홀히 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21세기북스 제공
온라인에서 만나 결혼한 영국인 커플 데이비드 폴러드와 에이미 테일러의 디지털 아바타. 하지만 가상의 관계와 실제 관계 속에서 방황한 이들은 결국 이혼했다. 온라인 관계에 몰두해 실제 관계를 소홀히 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21세기북스 제공
온라인에서 만난 영국인 커플 데이비드 폴러드와 에이미 테일러는 두 번 결혼했다. 한 번은 아바타끼리 로맨틱한 어느 섬에서 디지털 결혼식을, 또 한 번은 낡은 공공건물에서 진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한 뒤 테일러는 어느 날 잠에서 깨 남편이 온라인상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목격하고 격분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결국 파국을 맞았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에 실린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디지털 세상과 실제가 뒤엉킨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온라인에서 인맥 쌓기에 몰두하고 있다. 페이스북 친구가 수천 명, 트위터 팔로어가 수만 명인 사람도 많다. 온라인 친구가 많으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도움이 될까? 외로울 때 위안을 줄 사람이 많을까?

사실 현대인의 고립 정도는 심각하다. 75세 이상 미국 남성의 4분의 1, 여성의 2분의 1이 혼자 산다. 배우자의 사망이나 이혼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보다 혼자 지내는 사람의 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 한국도 전체의 26.5%가 1인 가구다.

미국 발달심리학자인 저자는 디지털 울타리 안에 사는 현대인에게 대면 접촉의 장점을 설파한다. 직접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면 정신적 만족감과 건강, 현명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접속하지 말고 접촉하라’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사례다. 다양한 연구 결과가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이탈리아 남부 사르데냐 섬은 세계적인 장수촌이다. 이곳의 100세 이상 노인 비율은 세계 평균보다 6배 이상, 100세 이상 남성의 비율은 10배 이상 높다. 의사인 조반니 페스 박사는 이곳 주민의 유전정보와 진료기록을 연구해보니 장수 비결이 가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사르데냐 사람들은 장성한 뒤에도 부모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다. 어른에게 사랑과 헌신, 존경심을 보이는 데서 기쁨을 찾는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는 12∼17세 800명의 식습관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정기적으로 가족과 얼굴을 보며 식사하는 12세 아이들은 17세가 됐을 때 음주, 흡연, 마리화나에 빠지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절반 이하였다.

한 사람이 친밀한 대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치는 얼마나 될까.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 교수가 제기한 ‘던바의 법칙’에 따르면 150명. 그러니 사람 욕심을 더 내봤자 소용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는 직접 만나지 않으면 최소 18개월에서 최대 7년 안에 우정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대면 접촉이 없을 경우 감정적 친밀함은 1년에 15%씩 줄어든다.

미국 기업들은 대면 접촉이 주는 일의 능률에 주목하고 있다. 직원들끼리 목표를 공유하고 친밀감을 높여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서로가 일정 거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구글은 본사 건물을 신축하면서 한가운데 녹지를 건물이 둘러싸도록 설계했다. 직원 8000명은 서로 연결된 65개 건물에서 일하는데, 한 건물에서 일하는 직원은 던바의 법칙처럼 평균 123명이며 서로 2분 이내 거리에 있다.

이는 기업에서 디지털 기술에 의존한 화상회의와 서면보고를 통해 조직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기존 주장을 뒤엎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이 곧 지옥이다’라고 했지만, 서로 보고 말하고 느끼는 이 단순한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으며 살고 있는 셈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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