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자신은 빠진 문재인의 육참골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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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문재인 대표에 의해 새정치민주연합의 구원투수로 영입된 교수 출신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우산지목(牛山之木)’이라는 어려운 말을 썼다. 제나라 우산은 원래부터 민둥산이 아니었듯 새정치연합도 본래 희망이 있는 정당인데 패권과 계파 이익만 추구하다 민둥산이 돼 버렸다는 자아비판이다.

‘봉숭아학당’이라는 지적을 받던 새정치연합이 김 위원장 덕에 결기를 되찾고 대학 강의실 수준으로 격상된다면 굳이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혁신의 핵심인 공천 문제를 주무르게 될 김 위원장부터 “저는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습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심정으로만 백의종군


당내에선 문 대표가 김 위원장의 손을 빌려 ‘반(反)문재인 세력’을 베는 차도(借刀) 살인을 도모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비노(비노무현) 중진들이 혁신위 참여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안철수 의원이 문 대표가 제기한 대선주자협의체인 ‘희망 스크럼’ 참여를 거절한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 대표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했다. 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의미로 일본의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 나오는 말이다. 문 대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혁신위를 뒷받침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당의 수습과 쇄신을 위해” 사무총장을 비롯해 주요 당직을 맡은 의원 9명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런데 정작 대표 자신은 ‘백의종군’ 대상에서 쏙 빼놓았다. 자신부터 대표로서 기득권을 내려놓는 백의종군의 ‘심정’만 표시할 뿐 실행이 없다. 자신이 추천한 김 위원장이나 친노(친노무현) 측근들의 출마를 포기시키는 ‘육참’의 각오가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어떤 혁신안을 내놓은들 누굴 설득할 수 있겠는가. 결국 내년 총선, 이듬해 대선에서 친노 기득권을 움켜쥐고 마이웨이 하겠다는 속내라는 의구심을 불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물 속 새정연 넘어 해외로

문 대표가 오늘이라도 “혁신위가 성역 없이 당을 혁신할 수 있도록 나부터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그러고는 연말까지 6개월 동안 외국으로 나가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독일을 찾아가면 상대방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기득권을 같이 내려놓는 결단에서 시작되는 사회적 대타협의 비결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를 방문하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 정부가 각종 친(親)기업 규제완화 정책에 힘입어 이 나라를 ‘유럽의 병자’에서 유로존 부흥의 선봉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에 가면 공무원 노조의 기득권에 포로가 돼 파산지경에 이른 정부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국내 정치 상황이 막혀 있을 때 해외연수를 준비와 충전의 기회로 삼곤 했다. 빌리 브란트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헨리 키신저, 에드워드 케네디 같은 해외 지도자들과 만나 교류하고 세계의 흐름을 흡입한 것은 야당 주자 김대중이 글로벌시대 국정운영을 위한 비전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문 대표는 ‘우물 안 새정치연합’을 넘어서 보다 넓어진 안목으로 돌아오는 ‘비움의 미학’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특정 계파의 수장이 아니라 수권야당의 대표주자로,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경제와 청년들 앞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매김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문재인#우산지목#공천#육참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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