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국내 10배 규모” vs “검열 심해… 하청업체 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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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차이나 블랙홀']<下>주요 제작사들 중국행 러시… 약인가 독인가
中방송시장 두자릿수 성장세 전망“… 새 길 개척하고 선점해야” 낙관론
제작시스템 차이… 저작권도 가져가, “호랑이 새끼 키우는 격” 비관론

《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중국에서 더 큰 기회와 가능성을 찾고 싶은 거예요.”(중국에 진출하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장태유 PD)

“중국은 호락호락한 시장이 아닙니다. 외국인이 메이저로 커가는 것을 용인하지 않아요. 자칫하면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어요.”(국내 방송사 콘텐츠수출 관계자)

한국 방송 인력의 중국 진출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중국의 방송 시장 규모가 워낙 큰 데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낮아 기회가 큰 만큼 위험도도 높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방송 콘텐츠 시장 규모는 20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6조∼7조 원)보다 3배가량 규모가 크다. 시장분석업체인 PwC가 실제로 집계한 규모도 20조 원대이며 두 기관 모두 앞으로 5년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
시장이 커진 만큼 러브콜의 통도 커졌다. 예전엔 ‘왕년의 스타’ 연출자나 영화감독을 고용하는 형식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핫’한 작가와 연출자, 심지어 제작 시스템을 통째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 작가 ‘홍자매’와 중국에 진출하는 본팩토리의 문석환 대표는 “중국 쪽에서 홍자매를 콕 찍어 연락해왔다. 중국에는 남성 작가의 선 굵은 작품이 많아선지 홍자매 특유의 발랄한 로코(로맨틱 코미디)에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스타 드라마 PD인 신우철 PD와 함께 중국에서 사극을 제작하는 삼화네트워크의 안제현 대표도 “러브콜을 보내온 중국 쪽 제작사의 절반이 신 PD를 원했다”고 말했다. 요즘 중국으로 가는 드라마 제작사는 ‘제빵왕 김탁구’를 제작한 삼화, ‘해를 품은 달’의 팬엔터테인먼트, ‘별에서 온 그대’의 HB엔터테인먼트 등 모두 메이저급들이다. 삼화는 작가와 스태프 20여 명도 함께 중국에 갈 계획이다. 합작의 규모가 커질수록 중국에 진출하는 인력의 범위도 헤어와 메이크업 아티스트까지 넓어지고 있어 “차이나 드림이 아니라 차이나 블랙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내 제작자들에게 중국의 ‘큰손’들은 반가운 존재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중국이 제시하는 연출료와 작가료가 국내보다 2∼3배 이상 높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예능 제작사 대표는 “국내 예능 프로의 회당 제작비는 7000만∼1억 원이지만 중국은 7억∼8억 원이라 규모가 다르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MBC ‘나는 가수다’ 포맷을 수출한 후 중국 후난TV에서 자문 PD로 참여했던 김영희 PD는 “시장을 한국만으로 한정해서는 늘어나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유건식 KBS 드라마국 팀장도 “중국 시장 진출은 막을 수 없는 대세다. 시장이 열렸는데 새로 길을 개척하고 선점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본 작업 단계부터 존재하는 정부 검열을 비롯해 두 나라 간의 제작 시스템 차이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적지 않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중국에 진출했다가 중간에 계약이 무산돼 돌아온 제작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국과의 합작이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국내 인력이 제작에 참여했거나 공동 제작한 드라마나 프로그램 중 상당수는 중국 측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한 방송사의 포맷수출 담당자는 “선진국들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핵심 역량을 공유해야 하는 공동제작 방식은 피한다. 국내 인력이 중국에 기술이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건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격”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강만석 박사는 “자국문화보호 정책이 강한 중국에서 공동제작은 한류의 새로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중국의 지나친 규제를 완화하고 우리의 창작역량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차이나#호랑이#하청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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