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곽정환PD, ‘빠스껫 볼’을 위한 솔직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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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2월 30일 12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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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 곽정환 PD가 CJ E&M으로 이적 후 약 2년 만에 첫 작품을 내놨다. 그의 장점인 ‘시대극’에 ‘농구’라는 흥미로운 소재가 더해진 tvN ‘빠스껫 볼’(연출 곽정환, 극본 김지영 장희진)이다.

곽 PD의 복귀작이라는 사실과 흥미로운 소재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시청률 면에서만 보면 실패라는 쓴맛을 봐야했던 것.

일제강점기 격동의 근대사에 청춘들의 농구 열정을 접목한 스토리는 탄탄했고, 풍성한 CG와 독특한 카메라 워크를 담은 영상미는 유려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했다. 하지만 신인 배우들이 전면으로 나선 과감한 캐스팅, 다소 이야기를 무겁게 다룬 점 등은 아쉬움을 남겼다.

직접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한 곽정환 PD의 변은 어떨까. 그는 인터뷰 요청에 주저함 없이 흔쾌하게 응했다. 그리고 무척 솔직하게 대답을 해나갔다. ‘빠스껫 볼’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을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마음이 앞서 놓친 부분들이 많다. 또 상황적으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라는 민감한 소재 때문에 대본 수정도 많이 이뤄졌고, 홍보도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고, 캐스팅에서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주연에 신인 배우를 대거 캐스팅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한류스타 등 일본 시장을 염려한 배우들이 캐스팅을 거절하더라. 당시 섭외하려고 했던 배우 70%가 일본 시장을 이유로 섭외를 거절하고, 30%는 케이블 채널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했다. 한국 배우들에게 일본 시장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를 드라마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드라마를 통해 내가 담고 싶은 주제들이 있다. 그런데 현대극에서 표현을 하면 노골적으로 전해진다. 같은 칼부림이라도 시대극에서 보여지는 것과 현대극에서 보여지는 느낌이 다르지 않나. 시대극을 통해 현대에 사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또 드라마로서 시대적 절박함이 극적 전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를 고증해 사실적으로 전달하려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졌다. 일제가 총과 칼로 억압하던 때도 있지만, 부작용 때문에 문화적으로 교묘하게 탄압을 했다. 법으로 강요하기 보다 단계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사실을 그리다 보니 일제라는 배경 장치가 약화됐다.”

-역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한 이유가 있나.

“MBC 드라마 ‘기황후’를 비롯해 몇몇 드라마는 극적 전개를 위해 역사와 다르게 스토리를 짜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감동과 교훈을 준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며 흥미를 자극해 돈만 벌겠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일제강점기를 그리며 일본 사람은 무조건 나쁘게 그리면 대본 쓰기도 쉽고 재미를 만들기도 쉽다. 하지만 ‘빠스껫 볼’은 다소 재미가 떨어지더도 역사를 제대로 담으려고 노력한 드라마다.”

-역사 왜곡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다. 드라마의 사회적 책임에 많은 관심을 두는 편인가.

“물론이다. 드라마는 문화산업이다. 산업이기는 하지만 그전에 대중들이 공유하는 문화다. 과연 청소년에게, 내 자식에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를 따져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스껫 볼’은 그런 지점에서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과 주제의식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유익한 내용도 시청자들이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지 않나.

“시청률을 무시하는 것도 대중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방송은 공공재다. 환영받지 못하는 내용이라도 가치가 있다면 방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내가 혼이 덜 난 건가도 싶고.(웃음) 요즘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과연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뭘까 고민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빠스껫 볼’이 담고자 한 주제의식은 무엇인가.

“딱히 주제의식을 정해놓고 전달한다기보다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표면적인 묘사를 넘어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다. 개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히 주변 인물만은 아니다. 개인과 개인을 둘러싼 사회 구조를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빠스껫 볼’은 역사 주체로서 권력집단과의 관계, 농구를 통한 개개인의 갈등과 화합을 그려봤다.”

-상업화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매번 주제의식을 담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렇다. 이 작품을 허락한 tvN측은 대단한 결정을 한 거다. 제작 전에 ‘tvN 색깔과 과 맞지 않는다. 수익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난 ‘지상파와 경쟁하려면 과감하게 색다른 시도를 하고 색깔을 넓혀야 한다’고 설득했다. 처음부터 시청률과 수익에 중점을 둔 작품은 아니란 거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웃음) 시청률도 잘 나왔으면 후배 PD들에게도 의미있는 작품을 시도할 기회를 많이 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작품 내용을 넘어서 제작 방식에서도 사전제작을 추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시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제작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늦어지는 대본 전달에 스태프들은 인간답게 일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작품의 질과 제작 환경을 위해 사전제작이 필수적이다. 다음 작품도 사전 제작을 할 계획이다.”
-차기작은 생각해 본 내용이 있나.

“있다. 1980년대 후반 달동네 재개발과 관련한 내용이다. 그들이 쫓겨나는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영화로도 성공했던 원작이라, 이번에는 시청률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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