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소재 상큼하고, 대사도 구수한데… 마무리는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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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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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 ★★★☆

자수성가한 고집불통 봉달수 회장(윤주상·왼쪽)과 자서전 집필을 맡은 신소정 작가(함수정).드림인터내셔널 제공
자수성가한 고집불통 봉달수 회장(윤주상·왼쪽)과 자서전 집필을 맡은 신소정 작가(함수정).드림인터내셔널 제공
단출한 무대를 꽉 채우는 주인공의 연기, 관객의 웃음을 툭툭 이끌어내면서도 거듭 쌓아가는 극적 긴장, 4.4조의 운율을 기본으로 담아낸 감칠맛 나는 대사들…. 작가 김태수, 연출가 주호성, 배우 윤주상이 2001년 평단과 객석의 호평을 받은 연극 ‘꽃마차는 달려간다’ 이후 11년 만에 다시 뭉쳐 내놓은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가난을 딛고 보청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봉달수 회장은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회복한 뒤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자서전을 쓰려고 한다. 자존심 강하고 까칠한 성격의 유명 작가 신소정은 급전이 필요해 자서전 집필을 맡게 되지만 외골수에 직선적인 성격의 봉 회장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봉 회장은 과거를 되짚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외면해온 상처와 맞닥뜨리고, 이를 지켜본 신 작가는 조금씩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연극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오랫동안 부정하거나 외면해온 과거의 상처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닫아버리면서 외부 세계에도 문을 닫아버린 외골수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난청을 해소해주는 보청기를 소재로 삼은 점도 절묘하고, 허영심을 충족시키려는 자서전이 ‘마음의 문’을 열게 해준다는 설정도 설득력 있게 다가섰다. “와글와글 수다에 보글보글 파마, 자글자글 주름! 아줌마를 규정짓는 몇 가지에 언니, 다 포함돼” “인간이라는 게 뜨거워도 호호 불고 차가워도 호호 불게 생겨먹은 족속들이라”처럼 의태어, 의성어를 적절하게 섞거나 운율을 고려한 대사들의 구수한 맛도 좋았다.

하지만 윤주상-함수정 두 사람의 연기조합에서 윤 씨의 연기가 무대를 꽉 채울 만큼 능수능란했던 반면 상대적으로 함 씨의 존재감은 떨어졌다. 두 사람의 대결구도가 끝난 뒤부터 극적 긴장이 느슨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두 주인공이 과거의 상처를 인정하고 껴안으며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좋았지만 지나치게 밝은 마무리가 작위적인 느낌을 줬다. 특히 죽은 아내가 소아마비 환자로 다리를 심하게 전다는 것을 평생 짐스러워했던 자신의 잘못에 눈뜨게 된 봉 회장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신소정 작가와 신나게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 그 윤리적 무감각이 불편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봉달수 역에 윤주상 송영창 씨가, 신소정역에 함수정 김로사 씨가 번갈아 선다.18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1만5000∼5만 원. 02-929-8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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