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섬뜩한 독재의 비결… 핵심 지지층에게만 떡고물 뿌려라

  • Array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독재자의 핸드북/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 알라스테어 스미스 지음·이미숙 옮김/439쪽·1만6000원·웅진지식하우스

‘독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는가’ ‘천연자원이 풍부한 독재국가의 국민들이 어째서 가난에 허덕이는가’….

이런 질문들에서 책은 출발했다. 미국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들은 독재자의 행태를 분석한 뒤 그들의 통치 법칙을 요약한다. 그 요체는 다음 한 문장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최소한의 핵심 집단을 확보하고 그들에게 보상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독재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국가에서도, 기업과 사회단체 등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작동한다.

저자들은 먼저 분석의 틀로 정치 집단의 세 범주를 제시한다. ‘명목 선출인단’은 선거권을 가진 모든 사람이다. 이들은 대체 가능한 집단이다. 다음은 ‘실제 선출인단’이다. 그들의 지지가 승리에 영향을 미친다. 유력 집단으로도 불린다. 마지막으로 ‘승리 연합’으로 지칭되는 집단이 있다. 통치자는 이들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른바 필수 집단이다.

독재자의 통치법칙이 전형적으로 나타난 곳은 201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인구 약 3만6600명의 소도시 벨이었다. 이곳의 행정관 로버트 리조는 17년간 일하면서 파산 직전이던 도시를 예산 균형이 맞게 탈바꿈시켰다. 1993년 취임 당시 7만2000달러였던 그의 연봉도 퇴임하던 2010년 여름에는 78만7000달러로 불어나 있었다. 미국 대통령의 연봉 40만 달러보다 많았다. 결국 그의 업적은 정치적 술수에 의한 것임이 드러났다.

독재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아닌 측근에 의한, 측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1981년 4월 북한 김일성 주석(오른쪽)과 아들 김정일.
독재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이 아닌 측근에 의한, 측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1981년 4월 북한 김일성 주석(오른쪽)과 아들 김정일.
그는 시의원 5명 중 4명에게 연봉 10만 달러를 안겨주고 지지를 얻어냈다. 시의원들은 세금을 올리는 데 동의하면서 리조와 자신들의 배를 채울 재정을 마련했다. 시의 재정은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이 많은 이 도시의 시민들이 인근 지역보다 50%나 많은 재산세를 내야 했다.

이 책은 역사와 국제사회에서도 권력과 집단을 둘러싼 많은 사례를 제시한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귀족 대신 평민들을 발탁해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귀족들에게는 충성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음을 수시로 경고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선거에서 ‘다시 강국을 만들자’며 긴축정책을 제시했다가 국가 건강보험과 복지국가를 ‘보상’으로 내세운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패배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군부에 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분석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사례를 바탕으로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을 꼽았다. △첫째, 권력 유지에 필요한 필수 집단은 최소의 규모로 유지한다. 핵심 집단이 작을수록 통치자가 통제하기 쉽고 그들에 대한 보상이 수월해진다. △둘째, 대체 가능한 명목 선출인단은 최대 규모로 유지한다. 누구든 쉽게 갈아 치울 수 있을 만큼 선출인단 규모가 크면 그 구성원들은 쫓겨나지 않기 위해 충성을 한다. △셋째, 돈의 흐름을 통제한다. 국민을 궁핍하게 만들어 얻은 돈으로 지지자를 부자로 만드는 현금 흐름이 가장 좋다. △넷째, 필수 집단이 새 지도자를 찾아 헤매지 않을 정도만 보상하고 그 이상을 줘서는 안 된다. △다섯째, 국민을 잘살게 해주겠다고 지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는 안 된다.

정치란 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지, 공공이나 국민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들의 관점이다. 정치의 동력은 통치자의 사적인 이해관계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재국가일수록 유사시 통치자의 탈출을 위해 도심과 공항을 연결하는 도로가 직선에 가깝게 만들어진다. 당장의 정치적 지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보호는 허술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3대 세습이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통치의 법칙을 알면 독재나 나쁜 통치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통치자와 소수의 핵심 집단, 유력 집단이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대규모로 연합하는 것이다.

책이 분석하는 통치의 법칙은 흔히 얘기하는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마키아벨리즘은 일종의 주의(主義)인 데 비해 저자들이 제시하는 통치의 법칙은 구체적 방법론이어서 한층 섬뜩하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