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칼럼]<조벡의 할리우드 in the AD> 연기하는 패셔니스타? 패셔너블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8일 14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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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섹스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 역을 맡아 패셔니스타로 등극한 사라 제시카 파커.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섹스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 역을 맡아 패셔니스타로 등극한 사라 제시카 파커.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Sarah Jessica Parker)를 두고 할리우드와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 그 속편 격으로 2편의 영화까지 제작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를 맡아 다양하면서도 개성있는 스타일들을 에피소드마다 선보이면서, 말 그대로 패션의 메카 뉴욕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단 한번이라도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적인 있는 사람이라면, 왜 모두가 입을 모아 그녀를 패셔니스타로 칭송하는 지 금방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모두가 주목하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고난도의 스타일링으로 에피소드마다 보는 즐거움을 더했고, 그로 인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 바로 '패션'으로 보여지게 한 혁혁한 공까지 세웠다.

▶ "진짜 뉴요커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배우"

물론 드라마 초반, 캐리 브래드쇼라는 이 전대미문의 패셔너블한 캐릭터를 위해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패트리샤 필즈(patricia Fields)가 엄청난 공을 들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런 스타일리스트의 노력에 부응해 캐릭터를 살아있는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시키는 데 사라 제시카 파커의 개인적인 패션 센스 또한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반론이 없다.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즈도 사라 제시카 파커의 감도 높은 패션 센스를 인정했다.

"만약 사라 제시카 파커가 아닌 다른 배우가 캐리 역할을 맡았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캐리의 스타일에 그토록 열광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제가 제시한 스타일이 아무리 캐릭터에 부합된다 하더라도, 결국 그 스타일을 입고 연기를 해 내는 것은 배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는 정확한 선택이었죠. 사라 제시카 파커야 말로 진짜 뉴요커 스타일을 표현해 낼 수 있는 할리우드에 존재하는 몇 안되는 배우이니까요."

그렇게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는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여성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패션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극 시켰고, 패션과 스타일이 중요시 되는 드라마의 효시 격이 되었다. 사라 제시카 파커가 패션계와 할리우드를 아우르는 트렌드세터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부이자 엄마의 모습인 사라 제시카 파커.
주부이자 엄마의 모습인 사라 제시카 파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라 제시카 파커의 평소 스타일이 캐리 브래드쇼와 닮아있지 않을까 지레 짐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서로 닮아 있는 부분이 없다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실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바로 가족과 아이들의 존재의 유무에서 오는 차이이다. 그녀는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가 스타일 아이콘으로 사는 것에 대한 작은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언제나 캐리처럼 차려 입고 다닐 꺼라고 생각하나 봐요. 어떤 의미에서 캐리라는 캐릭터가 그만큼 현실감이 있다는 의미로 생각하자면 좋은 반응이지만, 가끔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어요. 특히 관광객들이 우연히 뉴욕거리에서 저를 만났을 때, 뉴요커인 캐리가 편안하고 실용적인 복장으로 아이들과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정말 난감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 떨어졌거든요."

하지만 조금만 더 깊숙히 그녀의 패션에 대해 고찰해 보면, 그녀가 평상시에 입는 의상들 거의가 트렌디한 뉴요커를 대변하는 잇 아이템들로 가득하다. 아주 실용적이면서도 품질에 신경쓰고, 내추럴한 컬러를 구사하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미국 특유의 장인정신이 깃든 아이템들을 선호하는 그녀이기에 캐리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뉴욕의 시간을 살고 있는 뉴요커의 스타일이 그대로 배어난다.

▶ "변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 보여줄게요"

사라 제시카 파커가 처음으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한 대형 양판점 '비튼' 광고 사진.
사라 제시카 파커가 처음으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한 대형 양판점 '비튼' 광고 사진.

필자와 사라 제시카 파커의 첫 작업은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의 한 광고 캠페인을 통해서 였는데, 어쩌면 그녀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그리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딱히 촬영장 분위기가 나빴다거나, 촬영 결과물이 잘못 돼서가 아니라, 그녀가 여러 업체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처음으로 선택해서 진행하게 된 대형 양판점 스티브&베리즈(Steve & Barry's)과 협업해서 런칭한 브랜드인 '비튼(Bitten)'이라는 브랜드의 광고 작업이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라 제시카 파커의 팬들에게조차 이제는 생소한 이름이 된 이 '비튼'이라는 브랜드는 패셔너블한 이미지의 최정점을 달리던 그녀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타격을 주었다.

당시는 사라 제시카 파커가 입거나 신거나 들면 모든 것이 유행이 되고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기에, 많은 의류 제작 업체들과 유통업체들이 앞다투어 그녀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원했다.

그녀는 모든 제안을 제치고 다소 파격적으로 고급스러움은 지키되 $20 전후의 파격적인 가격을 앞세운 브랜드 '스티브&베리즈'를 택했다.

그간 작품들을 통해 럭셔리한 패션 스타일을 피로해왔던 그녀가 저가의 브랜드로 승부수를 띄웠다는 사실은 패션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판매되는 아이템들은 저렴하지만 이미지는 고급스럽고 세련되게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사라 제시카 파커는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명망높은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스태프를 꾸려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최고의 스태프에 배우이자 디자이너인 사라 제시카 파커가 직접 모델로 나선 광고 캠페인은 매장에 진열된 아이템들이 $20 전후라는 것이 절대 믿어지지가 않게 소비자들에게 최면을 걸기에 충분한 장치였다.

'비튼'은 브랜드적으로는 순항하는 듯 보였으나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부딪치게 되었다. 모 회사인 스티브&베리즈가 경영파산에 이르게 된 것이다. 런칭하고 몇 시즌이 지나기도 전에 브랜드는 모회사와 함께 좌초되었고, 그렇게 사라 제시카 파커의 패션 브랜드는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에게 역시 그 당시의 이야기는 안하고 싶어지냐고 묻자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었지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날 당시에는 마음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예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로 인해 브랜드를 그만두게 되었으니까요. 내 의지로 그만 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라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어쩌면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아직도 그녀가 패션에 대한 열정을 식히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얼마 전까지 그녀는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할스톤(Halston)'의 헤리티지 라인의 디자이너로 활약했고, 동시에 브랜드의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영화 '섹스 앤 더 시티2'에서를 필두로 각종 행사장에 할스톤의 드레스를 선보이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미국판 보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가 할스톤의 디자이너 자리를 그만두었다고 발표하자, 다시 많은 패션 관련 기업들이 그녀에게 새로운 제안들을 건네고 있다고들 하지만 아직 그녀는 다음 행보를 결정하지 않고 천천히 여러가지 가능성에 관해 생각 중이라고 했다.

"어쩌면 캐리라는 캐릭터는 저를 보면 자연히 겹쳐 보이는 잔상(殘像)인 것 같아요. 가끔은 큰 짐과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동시에 제가 평생 받은 것 중에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니까요"라며 캐리에 대한 복잡다단한 심정을 말했다.

정말 어쩌면 아직 대중들은 사라 제시카 파커라는 배우를 통해 조금 더 캐리 브래드쇼를 보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제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캐리와 그녀의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엿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런 아쉬움에서 인지 몇 번을 본 에피소드라도 다시금 TV에 흘러나오면 그냥 편하게 다시 보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왠지 그녀의 근본적인 고민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영화에 출연하고,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을 해도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그 속에서 그리워하던 캐리 브래드쇼를 찾고 있다 보니, 그녀가 말하는 '짐'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제는 기억에서도 흐릿하지만, 사실 '섹스 앤 더 시티' 전의 사라 제시카 파커는 할리우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여배우였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함께 출연한 영화 '허니문 인 베가스'에서도, 브루스 윌리스와 출연한 '스트라이킹 디스턴스'에서도, '조강지처 클럽'에서도, 다른 사람은 범접하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여배우였다. 하지만 '섹스 앤 더 시티'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왠지 모르게 캐릭터들이 섹스 컬럼니스트 캐리라는 캐릭터 속으로 묻혀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파격적인 변신을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격변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택했어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바꿔가는 방법이요. 왜냐하면 저는 맥 라이언과 같은 과오를 범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로맨틱 코메디의 이미지에 국한된 것에서 벗어나고자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서 대중들에게 잊혀져 갔다)"라며 누군가에게 미안한듯한 표정으로 코를 찡긋거리며 살짝 웃었다. 마치 캐리가 극중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그런 냉정한 분석을 듣고 나니, 어쩌면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는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명석한 배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캐리 브래드쇼라는 캐릭터 역시 사라 제시카 파커의 많은 노력들의 산물이기에 그리 쉽게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필자를 비롯한 대중들이 섹스 앤 더 시티의 시대가 끝났으니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에게 빨리 새로운 캐릭터를 찾으라 암묵적인 강요를 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아직도 캐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이렇게 해답을 말해 주었다.

"맞아요. 그럴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캐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가 삶에 있어 지혜를 많이 얻게 되거든요. 그렇게 캐리가 그랬던 것처럼-패션을 사랑해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긴 하지만 결국 패션에 모든 것을 내던지지는 않았던 것처럼- 저도 패션을 사랑해 패션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그 바탕에는 배우로서의 일을 우선해서 생각하거든요. 왜냐면 저는 패셔너블한 배우이지 연기하는 패셔니스타는 아니니까요…."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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