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탐욕의 혀 놀리는 자들아, 그 입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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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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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경제/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12명 지음·김정혜 옮김/
708쪽·2만5000원·한빛비즈

겉장에서는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다. 평소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선뜻 다가오기 힘들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위기 이야기. 전문적인 내용을 담아내기로 유명한 파이낸셜타임스가 ‘휴가 때 읽을 책’으로 선정했다는 금빛 마크. 하지만 일단 겉장을 넘기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전날까지 세계 돈의 흐름을 주도했던 거대 투자은행이 하룻밤 사이 파산지경에 처했다. 이후 은행과 기업 할 것 없이 줄줄이 무너져 내렸고 369억 달러의 기금 규모를 자랑하는 하버드대마저 거대 적자에 허덕이게 됐다. 그런데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 누군가가 만든 ‘뜬소문’ 때문이었다면, 탐욕적인 몇몇의 안이함 때문이었다면. 다시 겉장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경제 이야기가 아니라, ‘(탐욕에) 눈먼 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해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가 출신 저술가 마이클 루이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니얼 퍼거슨 등 13명이 공동 저술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연사라고 생각했던 거대 은행의 죽음을 책은 ‘살해당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이름은 ‘베어스턴스’. 미국 5위의 투자은행이다. 1923년 설립돼 290억 달러의 주주가치를 자랑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 은행의 위기는 월스트리트 전체의 운명을 암시하는 서곡이었다. 베어스턴스에 근무하던 직원 1만4000명의 안정적인 미래도 함께 사라졌다.

베어스턴스의 끔찍한 위기는 의외로 뜬소문에서 시작됐다. 심각한 유동성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문이었다. 쉽게 말해 투자은행에 현금이 없고, 더 쉽게 말하면 곧 망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불거졌고 주주들은 등을 돌렸다. 현금이 없어진 투자은행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국 베어스턴스는 사망했다. 저자는 이 억울한 죽음 뒤에 음모가 있다고 추리한다. 당시 베어스턴스는 현금으로만 180억 달러 가까이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어스턴스는 자본 문제로 파산한 게 아닙니다. 이 가련한 투자은행의 파산에 돈을 걸었던 사람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렸고, 그 소문에 흔들린 사람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역사상 가장 악랄한 금융범죄입니다.” 다른 투자은행 고위 책임자가 베어스턴스 사태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그렇다면 누구 소행일까. 궁금함이 정점을 찍을 때 책은 ‘용의자’ 세 명을 공개한다. 골드만삭스와 시타델, 도이체방크다. 골드만삭스와 도이체방크는 베어스턴스와 같은 투자은행이고 시타델은 공격적인 투기성 자본을 내세운 민간 투자기금회사다. 세 곳 모두 베어스턴스가 몰락할 경우 얻는 이익이 컸다.

한빛비즈 제공
한빛비즈 제공
책은 세 곳 중 한 곳이, 혹은 세 곳 모두가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술책으로 주요 금융기관 몇 곳을 압박해 베어스턴스와의 거래를 보류하게 만들고, 이 정보를 언론에 흘리도록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베어스턴스의 억울한 죽음을 되짚어 볼 여유도 없이 리먼브러더스와 AIG 등의 몰락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가입자에게 1500억 달러의 손실을 끼치고 4억5000만 달러의 보너스 잔치를 벌인 보험회사 AIG도, 300억 달러 규모의 기금만 믿고 8년 사이 펜타곤 면적과 맞먹는 57만6000m²(약 17만5000평)를 확장해 온 하버드대도 모두 ‘눈이 멀었다’고 지적한다. 탐욕에 눈이 먼 이들을 방조했던 미국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자본주의자들의 ‘어리석은 다섯 가지 실수’를 꼽았다. 이를 두 가지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금융시장을 지나치게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흘러가게 방조했다는 것. 미국의 경우 금융시장의 규제자 역할을 해야 할 연방준비은행마저도 규제의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금이 과도하게 흘렀고 기업과 개인은 거품을 실제인 것처럼 착각했으며 은행들은 이를 기초로 무분별하게 대출해줬다. 되돌아온 것은 금융시장의 붕괴였다.

둘째는 무분별한 감세 조치다. 대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에게까지 주택담보대출의 손길이 뻗쳤고 이는 가정의 저축률을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또 고소득층과 기업을 위한 지나친 감세도 문제였다. 열심히 일하는 월급쟁이보다 투기로 불로소득을 얻은 사람들이 적게 세금을 부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서민들의 예금을 부당 대출 등에 남용하고 정작 위기 때 본인의 돈부터 인출했던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엄청난 적자를 낸 공기업의 보너스 잔치를 생각할 때 눈먼 자들은 먼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휴가 때 읽을 책’이라는 권고는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원제 ‘The Great Hangover’.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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