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순수하기만 했던 열혈 청년들, 그 10년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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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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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돐날’
연기 ★★★★ 연출 ★★★★ 대본 ★★★☆ 무대★★★☆

연극 ‘돐날’은 한때의 민주화 투사들의 세속화되고 변질된 모습을 그리지만 젊은 날의 이상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초상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극단 작은신화 제공
연극 ‘돐날’은 한때의 민주화 투사들의 세속화되고 변질된 모습을 그리지만 젊은 날의 이상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초상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극단 작은신화 제공
군부독재 시절인 1980년대 대학 캠퍼스엔 사회 변혁에 앞장선다는 자부심과 정의감으로 환히 빛나던 학생들이 유독 많았다. 최루탄 가스가 자욱한 시위 현장을 누비고, 공장에 위장취업하고, 저소득층 자녀들을 상대로 야학을 하던, 순수했던 그들 말이다.

시간을 그때로부터 10여 년 뒤로 돌려보자. 학교를 졸업했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을 그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연극 ‘돐날’(김명화 작·최용훈 연출)은 한때 이상사회 건설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의 후일담을 그린다.

운동권 출신 지호(정승길)와 정숙(홍성경) 부부가 첫아이 혜진의 돌잔치를 한다. 친구들이 모여 술판, 화투판을 벌인다. 흥겨워야 할 잔칫집 분위기가 자못 살벌하다. 그동안 일상과 생활고에 찌들대로 찌든 이들에겐 변질된 자신에 대한 자괴감, 변질된 상대에 대한 비웃음이 교차한다.

정숙의 친구 신자(정세라)는 이혼한 남편을 언급하며 “청춘을 그 놈팽이한테 시달렸잖냐. 젊어선 운동한다, 나이 들어선 고시 공부한다 … 징한 놈”이라고 욕한다. 정숙은 학업에만 열중인 남편에 대해 “그 인간하고 더 살 자신이 없어. 울화가 치밀어. 일하고 아이 키우는 몫은 당연히 내 몫이야”라고 토로한다. 건설사 하청업체를 운영하는 성기(서현철)는 시 쓰는 강호(김문식)에 대해 “너 시집도 안 팔린다는데 시인 때려치우고 나이트클럽 가서 모창 가수나 해라”라고 비아냥댄다. 시민운동하며 다단계 판매로 생활비를 버는 경우(김은석)는 정숙과 신자를 앉혀놓고 친환경 부엌 세제 영업에 열심이다. 성기는 지호에게 경영대학원 논문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지호는 분통을 터뜨린다. 감정들이 격해져 잔칫집은 난장판이 된다. 지호는 밤늦게 방문한 옛 연인 경주(길해연)와 다툼 끝에 칼에 찔린다.

극단 작은신화는 창단 25주년을 맞아 200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을 받은 이 작품을 2003년 재공연 이후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다. 원년 멤버 중 미선 역의 백은경 씨와 지호 역의 임영택 씨 등 두 명이 빠졌지만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배우들의 팀워크가 좋다.

예전 공연과 비교하면 바뀐 대사는 성기가 논문 대필 대가로 제시한 금액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바뀐 게 전부. 지호가 칼에 찔려 병원에 입원한 뒤 친구들의 병문안을 받는 에필로그는 빠졌다. “요즘은 굳이 에필로그로 관객을 안도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작가의 판단 때문. 그 ‘덕분에’ 막이 내린 뒤 마음이 찝찝하고 서늘하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7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2만5000∼3만 5000원. 02-76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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