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치의 본능, 문명을 잉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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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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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문명/장 카스타레드 지음·이소영 옮김/352쪽·2만2000원·뜨인돌

‘사치와 문명’은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문화권을 망라해 사치가 인류 문명을 얼마나 다채롭고 풍요롭게 했는지 분석했다. 여기서 사치란 물질적 호화로움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선 고차원적 정신, 문화·예술적 욕망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특히 고대 이집트인들은 탐미적 사치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550년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삿제후티의 미라 가면. 뜨인돌 제공
‘사치와 문명’은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문화권을 망라해 사치가 인류 문명을 얼마나 다채롭고 풍요롭게 했는지 분석했다. 여기서 사치란 물질적 호화로움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선 고차원적 정신, 문화·예술적 욕망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특히 고대 이집트인들은 탐미적 사치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550년경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삿제후티의 미라 가면. 뜨인돌 제공
외출할 때마다 여인들은 화장을 하고 팔과 겨드랑이의 털을 뽑은 후 향수를 뿌렸다. 보석함에는 상아 분 주걱과 금속 족집게, 나무 뼈 조개껍데기로 만든 빗, 그리고 잔털 제거용 면도날 등 치장을 위한 소품들을 보관했다.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 주인공에게 어울릴 듯한 이 같은 모습은 기원전 그리스 여인들이 즐겨하던 몸치장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치장 욕구가 오래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또 있다. 1882년 프랑스 브라상푸이에서 2만2000년 전 조각상 ‘두건을 쓴 부인’이 출토됐다. 이 조각상에서 부인이 쓴 두건은 생명을 유지하는 용도도, 자연의 위협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도 아니다. 그저 삶에 부수적인 ‘사치’를 부린 것이다. 이 책은 문명이 탄생한 이래 인간의 모든 행동에 사치가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기원 전후로 나눠 유럽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문화권 등에 새겨진 주요 문명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사치가 인류 문명을 얼마나 다채롭고 풍요롭게 했는지 분석한다. 여기서 사치란 물질적인 호화로움뿐 아니라 고차원적 정신, 문화·예술적 욕망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책은 수메르 이집트 이슬람 히브리 그리스 로마 인도 등 주요 문명을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사치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사치의 발판은 부(富)다. 그렇지만 인간은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지 않을 때도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사치를 추구했다. 이집트인들은 금접시에 진수성찬을 담아 먹으려 했고 여인들은 향수를 몸에 들이부었다. 늘 침략과 추방 등 시련을 겪었던 히브리인도 예루살렘을 세운 후 해상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자 사치부터 부리기 시작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부유한 히브리인들은 향기로운 실편백과 백목향 등 값비싼 목재로 거처를 꾸몄고 화려한 가구로 실내를 장식했다.

로마인은 특히 몸의 아름다움을 숭배했다. 몸단장 관련 직업도 천을 다듬는 직공, 튜닉을 만드는 사람, 자수업자, 염색업자, 소매가 달린 드레스 재단사, 신발에 향기를 내는 사람, 내의 제조업자, 구두수선공, 보석세공인 등으로 세분됐다. 여인들은 분과 연지를 과도하게 사용해 화장이 아닌 분장에 가까웠다. ‘화장발에 속지 말자’란 말이 이때 이미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0년 후 ‘비키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옷을 당시 로마 여인들이 이미 입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몬레알레 프레스코화 속의 여인들은 비키니의 선조격인 미니 팬티 브래지어 세트를 입고 ‘S라인’을 뽐내며 운동을 즐겼다.

문명이 생긴 이래 사치를 정당화하는 쾌락주의자와 반대하는 금욕주의자는 늘 대립해왔다. 그러나 사치 없는 인류는 상상할 수 없다. 인간 본능 속에 꿈틀거리는 사치가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품을 낳았고, 이를 통해 각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바빌론의 정원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판테온, 로마의 콜로세움, 인도의 타지마할, 프랑스의 베르사유궁 등도 결국 사치의 위대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책이 모든 사치를 변호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 사치는 물질을 넘어서는 정신적 차원의 것”이라며 “오늘날 사치는 물질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2000년대 이후 우리는 화려함보다는 진정성과 가치에 의해 상품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사치 역시 양이 아닌 질적인 개념으로 돌아서면서 그 본질을 찾을 것”이라며 낙관적 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 소박한 사치가 하나씩은 있다. 명품가방 또는 자전거일 수도 있고, 책을 탐닉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춤에 몰두하거나 세계여행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소박한 사치는 한 인간이 그 안에 지니고 있는 잠재성과 위대함을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사치를 통해 우리 인류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보여주듯, 한 개인의 소박한 사치도 그 사람의 삶을 한층 풍성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읽는 재미 외에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컬러로 된 다양한 유물 사진을 통해 눈으로나마 태고의 사치를 누릴 수 있다. 다만 저자가 한 권의 책에 너무 많은 문명을 다루려는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아쉬움을 준다. 문명 하나에 대한 내용을 30쪽 내외로 풀다 보니 설명하다가 중간에 딱 멈춰버린 것 같은 부분이 적지 않다. 문화인류학 또는 역사학적 지식이 없다면 다소 어렵고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치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한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중심으로 현재의 사치를 점검한 마지막 장은 사족처럼 여겨진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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