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궁지에 몰린 중년가장들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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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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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벽/현길언 지음/361쪽·1만2000원·문학과지성사

여기 한 중년 사내가 있다. 법대를 나와 목회의 길을 가고자 다시 신학대학을 갔지만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 일반 신도의 삶을 택한 사람. 대기업에 들어가 명석한 두뇌로 회사의 자금줄을 쥐락펴락하는 경리부장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룹 오너 아들들의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돼 ‘비자금을 횡령한 파렴치범’이 된 남자. 궁지에 몰린 그의 선택은 결국 자살이었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단편 ‘유리 벽’은 신문 사회면 구석을 차지할 만한 다소 상투적인 소재에 현미경을 들이대 인간의 고독과 상실감을 관찰했다. 언젠가는 회사에 배신당할 수밖에 없고, 부인과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있으며, 단골 술집 여자에게 기대지만 결국 남일 뿐인 오늘의 가장들. 그가 유서에서 절규한 ‘유리 벽에 갇힌 자신’은 소통부재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표제작을 비롯해 7편의 단편이 실렸다. 여덟 번째 소설집을 낸 일흔 살 저자의 글은 담백하면서 간결하며, 잘 맞춰진 큐브같이 빈틈을 찾기 어렵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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