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당신 생명의 가격은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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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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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격/에두아르도 포터 지음·손민중 김홍래 옮김/364쪽·1만4000원·김영사

경제는 ‘사람냄새’ 나지 않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모든 것을 이득과 손실, 가격의 개념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가격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일까?

‘모든 것의 가격’의 저자 에두아르도 포터는 가격도 인간적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 전반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격은 고전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수학적 공식과 합리적 계산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평가로 정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적인 축구경기를 보며 승리 국가에 돈을 거는 관객을 보자. 저자는 말한다. “문화가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증거는 많이 존재한다. 자존심을 가진 팬이라면 자기 나라 팀이 진다는 데 돈을 걸지 않을 것이다. 국가적 자존심으로 인해 팬들은 항상 자기 팀의 승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자국 팀 승률에 비합리적 가격을 매긴 팬은 예측 가능한 손해를 감수한다.

저자는 이렇게 인간의 삶 ‘모든 것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가격은 전통 경제학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 대상은 비단 사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명, 행복, 여성, 노동, 공짜, 신앙 등에도 가격이 있고 그들은 인간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이어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의 다양한 선택은 바로 우리 앞에 놓인 여러 대안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서도 이러한 가격의 논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혼인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 취업이 늘면서 부부가 결혼으로 희생해야 할 것이 많아지자 결혼의 비용, 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양육에 필요한 비용이 높기 때문에 아이를 적게 낳는다. 일부 국가의 부모는 딸을 시집보낼 때 부담하는 지참금이 부담스러워 여아를 낙태하기도 한다.

신(神)의 세상에서도 가격의 논리는 있다. 경제학자들은 가톨릭 신자가 줄어드는 이유는 믿음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개신교 신도가 되는 것보다 낮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개신교는 신도들에게 훨씬 더 큰 투자를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충성심을 자극한다는 것.

이 같은 가격의 논리는 어디에나 작용하고, 그렇기에 인간은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짜에도 가격이 있다. 조금만 따져보면 우리가 흔히 공짜라며 주고받는 것들은 궁극적으로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웹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뉴스 중 많은 수가 공짜다. 이용자가 많아지면 해당 뉴스 웹사이트는 효과적인 플랫폼이 된다. 기업들은 이 온라인 뉴스업체에 돈을 주고 광고를 싣기 시작한다. 뉴스업체는 그 돈으로 다시 독자를 위한 공짜 뉴스를 만든다. 결국 독자가 돈을 지불하지 않을 뿐 공짜 뉴스도 엄연히 생산가격을 가진다.

‘모든 것의 가격’에서 저자는 생명, 행복, 여성, 노동, 공짜, 신앙에도 가격을 매길 수 있고, 인간의 행위는 이런 가격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 가격은 고전경제학에서 이기심에 기초한 인간이 수학적으로 산출해내는 합리적 가격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왜곡된 비합리적, ‘인간적 가격’이다. 김영사 제공
‘모든 것의 가격’에서 저자는 생명, 행복, 여성, 노동, 공짜, 신앙에도 가격을 매길 수 있고, 인간의 행위는 이런 가격들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 가격은 고전경제학에서 이기심에 기초한 인간이 수학적으로 산출해내는 합리적 가격이 아니라 다양한 원인으로 왜곡된 비합리적, ‘인간적 가격’이다. 김영사 제공
공짜로 불법 다운로드한 파일은 어떨까. 정부와 저작권자는 손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가동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파일의 원래 가격이 상승하고, 그 파일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기 위한 비용도 따라서 올라간다.

심지어 생명에도 가격을 매길 수 있다. 9·11테러 희생자보상기금 운영자로 뽑힌 변호사 케네스 파인버그는 30대 남성에게 약 280만 달러, 70세가 넘은 남성에게 60만 달러 이하를 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테러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가치는 포기된 그들의 생산함수로 결정된다.…생명의 가치는 무한하다는 신념을 굳게 믿고 있는데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생명에 낮은 가격을 매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듯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것에 가격이 있고 개별 인간이 그것을 근거로 행위를 결정한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주장이다. 사실 이 논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것은 여러 지역의 사례를 제시하고 경제·사회·심리학을 넘나드는 다각적 해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멕시코 출신으로 오랫동안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저자는 미국 영국 멕시코 브라질 등을 돌며 경제·금융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아우른 식견을 선보인다.

저자는 책을 통해 여러 사례를 종합하며 모든 것의 가격이 어떻게 매겨지고 작동하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생명 신앙 미래 등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에 가격을 매길 때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가격 설정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심과 이성에 기초해 행위를 결정하는 ‘호모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아니다. 저자는 말한다. “호모에코노미쿠스의 개념은 ‘억제되지 않은 이기심’으로부터 탈피해 상대적 부의 분배가 개인의 만족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세상에 적합하도록 수정돼야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인간적 가격에 맞게 상대와 분배를 생각하는 인간의 경제학, 인간적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세상을 보는 더 바른 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측면을 포함시킨다면 경제학은 우리가 지난 50년 동안 익숙해져 온 것보다 더 지저분하고 수학적으로 덜 고상한 분야가 될 것이다.…그러나 그 대신 이 새로운 경제학은 세상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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