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형법 존속살해죄 삭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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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면 일반 살인죄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형법의 ‘존속살해죄’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법무부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폐지론자들은 직계비속이라는 신분 때문에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출생에 따른 차별이어서 헌법 11조의 평등권 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존속론자들은 효를 중시하는 전통 사상에 역행하거나 패륜범죄 처벌의 실효성이 약해질 우려가 있다고 반박합니다. 각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 찬성 - 살인죄로도 충분히 처벌 가능 ▼
가중처벌은 평등권 침해… 한국만 가부장적 조항 유지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부회장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부회장
직계존속(尊屬)에 대한 존중과 보은이라는 전통적 효(孝) 사상은 대가족제도와 가족 공동체의 긴밀한 유대감을 강조하는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에서 높은 윤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생활 속의 기본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사회규범이 존속 살인을 한 사람을 무겁게 처벌하자는 취지에서 형법의 존속살해죄를 입법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존속에 대한 존중이나 효 사상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높은 윤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생명을 법익으로 하는 살인죄에 효라는 사상을 함께 법익으로 규정하여 이를 형법에 반영해야 할 정도로 강한 시대적 사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즉 전통적 가치인 효는 우리 사회에서 도덕규범의 영역으로 편입되어야 하며, 더는 강제규범인 법 규범의 속성으로 둘 필요는 없어졌다고 본다.

존속살해죄는 유교적 전통에 의해 입법화되었으나 유교문화권 내에서 현재까지 이를 유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1973년 위헌 결정을 내렸으며, 1995년 형법 개정을 통해 이 조항을 폐지했다. 중국과 북한에도 존속살해죄는 없다. 법무부 형사법개정특위에서 존속살해 조항을 없애기로 하는 내용의 개정시안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은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 형법에서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30년 이하(가중할 경우 5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한다. 그리고 형법 제51조에 양형 결정을 위해 피해자와의 관계가 고려된다. 결국 재판 단계에서 패륜적 존속살인범은 얼마든지 중하게 처벌할 수 있으므로 존속살해죄를 따로 둘 근거는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친자관계를 지배하는 도덕이 인륜의 기본이라 하더라도 모든 도덕을 법률로 규정할 수는 없으며, 그동안 존속살인사건의 행태를 살펴보면 비속(卑屬)의 패륜성 못지않게 존속의 패륜과 잔혹성이 그 범행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존속살인을 가중하여 처벌하는 것은 차별이 될 수 있다. 이는 헌법 제11조의 평등권 조항에 위배되는 ‘출생에 따른 차별’이 될 수 있다. 또 존속살해죄 규정은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 형법의 역할을 넘어서는 도덕주의적 입법이며, 불평등한 가족관계를 전제하는 가부장적 입법으로 정당한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피고인의 패륜 정도보다 직계존속의 패륜 정도가 높거나 적어도 대등하다고 할 수 있는 경우에도 7년 이상의 징역형이라는 법정형으로 인하여 1회 작량감경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는 없으므로 존속살해죄의 법정형은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존속살해죄는 비속의 패륜만을 전제로 한 일방적 입법이고 헌법의 평등권을 위반한 위헌적 입법이다. 보통 살인죄만으로도 모두 흡수할 수 있다. 결국 과잉입법인 존속살해죄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당연하며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법무부 형사법개정특위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지켜보자.

오경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부회장
▼ 반대 - 孝사상 역행… 가족해체 불보듯 ▼
서구 개인주의 인간성 황폐 초래… 우리의 장점 왜 버리나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법무부 형사법개정특위가 존속살해·상해·폭행 등 패륜 처벌조항을 폐지하는 개정시안을 마련했다. 헌법상 평등권과 외국 입법례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이겠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인은 외국인과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한국 땅에는 개인주의가 정착하지 못한다. 서구 국가나 일본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개인이라면, 한국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가족이다. 한국에서 가족이 해체되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다. 가족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인에게는 개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나’가 ‘우리’로 바뀐다. 이런 정서 때문에 “친구야 ‘우리 집’에 가자”라는 말이, 말이 된다. 이런 말을 어느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인은 남과 이익 다툼을 하거나 투쟁하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면 투쟁심이 약하다. 그래서 유럽인이나 일본인에게 지고 말았다. 한국 지성인들은 이를 간파하고 한국인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민족개조론을 주창했다. 오늘날까지 많은 지성인의 주장은 서구 이론을 따라가는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민족개조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판명된 것은 민족은 개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민족이 개조되지 않는데도 서구 이론을 한국인에게 강요한 결과는 혼란밖에 없다. 한국 정치가 계속 혼란하고, 한국 교육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 서구 이론으로 강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서구의 개인주의가 순조로운 발전을 계속하고, 한국인의 서구화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면 한국의 혼란은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서구인들이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심하게 경쟁한 나머지 인간성이 황폐해져 가고 있다. 10여 년 전 하버드대 의사들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1세기 인류의 3대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와 심장병, 우울증이다. 세 가지 중에서 두 가지가 인간성의 황폐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성이 황폐해진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국인은 예전의 한국인과 다르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따뜻한 마음이 남아 있다.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에 매혹돼 나타나는 문화현상이 바로 한류문화다.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한류문화와 궤를 같이한다. 한류문화를 이끌고 있는 작가나 한국 기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인은 대부분 서구 이론에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따뜻한 마음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식인들은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됐다.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이론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서구 이론을 한국인에게 강요해 한국인을 더욱 혼란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형사법개정특위 소속 지식인들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또다시 민족에 죄 짓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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