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너 그리스야, 나 태극전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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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0일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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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한국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러스텐버그의 올림피아 파크 경기장에서 훈련을 마친 한국대표팀 선수들을 경찰들이 보호하고 있다. 러스텐버그=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7일 오후(한국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러스텐버그의 올림피아 파크 경기장에서 훈련을 마친 한국대표팀 선수들을 경찰들이 보호하고 있다. 러스텐버그=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과 일본이 2002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하던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국내 프로축구팀들도 유럽과 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한국축구를 알리고 유치 활동을 했다.

이 때 '축구의 나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전지훈련을 했던 국내 프로축구 A팀이 겪은 일이다. 이 팀이 훈련 캠프를 차리자 현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중 훈련장 근처를 떠나지 않고 서성이던 동네 청소년 몇 명이 있었고, 이들은 A팀에 갓 입단한 젊은 후보 선수 몇 명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하며 얼굴을 익히게 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훈련이 끝난 뒤 공을 같이 주고받게 됐고, 결국 편을 갈라 경기장 반쪽에서 미니 게임을 한판 벌이게 됐다. 놀랍게도 결과는 브라질 동네 축구선수들의 승리. 정확한 스코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네 선수들은 현란한 발기술을 보이며 골을 척척 넣었다.

물론 다음날 이 얘기를 들은 A팀의 주전 선배 선수들이 동네 선수들과 다시 게임을 치러 승리함으로써 '복수'를 하기는 했지만…

이처럼 타고난 볼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개인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게 뒤진다. 그런데도 한국축구는 월드컵 본선에만 8번을 출전하게 됐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적인 팀을 물리치고 4강 신화까지 썼다.

이런 한국축구의 강점은 강인한 체력과 조직력으로 볼 수 있다. 월드컵 등 국가대표 선수들이 맞붙는 큰 무대에서 한국축구는 유럽이나 남미 팀에 비해 볼을 다루는 테크닉은 좀 어설퍼도 체력과 조직력을 앞세워 맞대결을 해왔다.

12일 오후 8시30분(한국시간) 열리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B조 한국-그리스의 경기. 1차전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양 팀은 필승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실 개인기만 놓고 볼 때 우리 태극전사들 중에도 박지성 박주영 등 정상급 테크니션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리스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 그리스에는 테오파니스 케카스, 요르고스 사마라스, 디미트리오스 살핑기디스, 소티리스 니니스 등 발재간이 뛰어난 선수가 여러 명 포진하고 있다.

그리스 선수들은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팀 전체로 움직이며 협력 플레이가 뛰어나다"고 입을 모았다. 총력전을 다짐하고 있는 그리스 선수들이 우리 팀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기도 좋고 우리의 강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를 어떻게 격파할 수 있을까.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영화 '넘버 3'에 나오는 대사에서 그 답이 보인다.

'넘버 3'에서 조필(송강호 분)이라는 두목은 조무래기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얘기한다. "최영의(극진 가라테의 창시자)라는 분이 있었어. 그 양반 황소 뿔도 여러 개 작살내셨어. 그 양반, 스타일이 이래…, 그냥 소에게 다가가, 너 소냐?, 내가 최영의야. 그리고 그냥 소뿔을 꽉 잡아, 그리고 무조건 내려쳐, 그냥 뿔이 빠개질 때까지 내려쳐…. 이런 '무대포(무모함을 뜻하는 일본어)' 정신이 지금 필요하다."

그리스 선수들이 아직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우리의 태극전사들에게는 체력과 조직력 외에 이런 '무대포'에 가까운 투지가 넘친다는 사실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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