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근대 건축물엔 전통과 서양문물 녹아있죠”

  • Array
  • 입력 2010년 5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최예선, 정구원 지음/420쪽·1만8500원·모요사

“프랑스 리옹에서 유학을 할 때 100년이 된 건물에서 살았어요. 층고도 높고 계단도 좁고, 익숙하진 않았지만 옛 건물에서 사는 일이 재미있더라고요.”(최예선 씨)

“프랑스에서는 근대 건축물을 쇼핑센터나 카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된 건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어떤 건물들이 있을까 궁금해졌죠.”(정구원 씨)

미술사를 전공한 아내와 건축을 전공한 남편. 평범한 직장인 부부가 근대 건축물 답사기를 책으로 펴냈다. 최 씨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근대가 암울한 역사 때문에 매몰돼 있다는 생각을 늘 했다”며 “근대 건축물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느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휴일과 휴가를 이용해 서울부터 제주까지 옛 대사관, 성당, 가정집, 공장을 샅샅이 훑어 근대 건축물 70여 곳을 책에 실었다. 아내는 건물에 숨겨진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고, 남편은 건물 도면을 구해 3차원(3D) 그래픽으로 재현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인 프랑스리옹에서 살며 옛 건물의 매력에 빠졌다는 최예선 씨(오른쪽)와 정구원 씨 부부. 이들은 1년에 걸쳐 국내 근대 건축물을 답사했다. 사진 제공 모요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인 프랑스리옹에서 살며 옛 건물의 매력에 빠졌다는 최예선 씨(오른쪽)와 정구원 씨 부부. 이들은 1년에 걸쳐 국내 근대 건축물을 답사했다. 사진 제공 모요사
“근대는 이질적인 서양의 문물이 들어와 전통과 충돌하던 시기였죠.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근대 건축물 속에서도 그런 고민을 찾아볼 수 있었어요.”(최 씨)

성공회교회당인 인천 강화군 온수리성당과 강화읍 성당은 당시 사람들이 내놓은 답이다. 한옥과 서양의 대표적인 교회건축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을 결합했다. 외양은 한옥, 하지만 실내는 장방형에 돌기둥 대신 나무기둥이 줄지어 있다. 나무 외에도 흙과 기와, 벽돌을 주재료로 삼았다. 정 씨는 “당시 건물을 보며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의 조화를 고민하던 대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내 고민이 그때 사람들보다 부족하다는 반성이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관공서나 성당 외에도 골목길과 일반 주택처럼 사람들이 살아온 세월과 역사가 묻어나는 곳도 골고루 돌아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구룡포의 일본인 가옥 거리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이주해 온 어민들이 주로 살던 지역이다. 해안 뒤쪽의 언덕에는 아직 옛 신사가 남아있다. 신사로 올라가는 계단 양 옆에는 신사 건립을 도운 일본인들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광복 직후 마을 사람들이 시멘트를 바르고 한국인 유공자들의 이름을 써 넣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보존과 활용으로 이어졌다. 정 씨는 “건물 상당수가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어딜 둘러봐도 다 비슷비슷했다”고 말했다. 전시 자료가 부족한 데다 그 건물의 특징이 담겨 있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대구 도심의 거대한 연초제조창에서 미술 전시공간의 가능성을 보고 섬세한 장식이 살아있는 목포 동양척식주식회사 옛 건물에서 카페나 호텔을 상상한다. 최 씨는 말한다. “근대 건축물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던 곳이잖아요. 지금부터라도 그런 옛 건물들이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고 머물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장소로 활용됐으면 해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