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을 ‘△△’으로… 법정스님 미공개 유묵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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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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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6일 ‘이심전심 서예전’

지인에 건넨 ‘無染山房’ 작품
드 러내기 꺼려 낙관 안찍기도

생전 서예 즐기는 이유 물음에
“먹물 남아 붓장난 좀 할 뿐”


법정 스님의 미공개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붓글씨) 5점이 처음 전시된다.

유묵은 15∼26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한국서예관에서 열리는 ‘제1회 이심전심 부처님오신날 기념 서예전’에서 선보인다.

유묵은 소설가 정찬주 씨가 법정 스님에게서 받아 보관해온 것이다. 5점 가운데 한글로 쓴 3점은 1970, 80년대 법정 스님이 전남 순천시 송광사 불일암에서 수행할 때 썼고, 한문 2점은 1990년대 스님이 강원도의 한 오두막에 기거할 때 쓴 것이다.

법정 스님의 유묵 ‘無染山房(무염산방)’ 2점. ‘山’자를 2개의 삼각형으로 표현한 위의 작품에서는 법정 스님의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유묵 ‘無染山房(무염산방)’ 2점. ‘山’자를 2개의 삼각형으로 표현한 위의 작품에서는 법정 스님의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유묵 중 ‘無染山房(무염산방)’이라고 쓴 것이 가장 돋보이는데, 이는 스님이 정 씨의 작업실 현판용으로 선물한 것이다. 무염은 법정 스님이 내린 정 씨의 법명(法名)이다. 이 작품 중 ‘山’자를 2개의 삼각형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법정 스님이 당시 정 씨가 살던 전남 화순군 이양면 쌍봉산의 두 봉우리를 그림처럼 나타낸 것이다.

김순기 한국서예관장은 “이 작품은 스님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았다”며 “산을 삼각형으로 표현해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소박하면서도 기상이 넘친다”고 평가했다.

스님은 이 작품에 낙관을 찍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의 글씨임을 내세우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고 정 씨는 전했다. 법정 스님은 나중에 낙관을 찍지 않은 점을 미안해하며 낙관을 찍은 똑같은 글씨 하나를 정 씨에게 선물했다.

법정 스님이 자작시를 적은 유묵. ‘명산에는 좋은 차가 있고 저기 또한 좋은 물이 난다 하더라’라고 적었다. 김재명 기자
법정 스님이 자작시를 적은 유묵. ‘명산에는 좋은 차가 있고 저기 또한 좋은 물이 난다 하더라’라고 적었다. 김재명 기자
스님이 한글로 쓴 3점에는 ‘흐르는 물은 산을 내려와도…’로 시작하는 고려시대 백운 화상의 어록 중 일부, ‘명산에는 좋은 차가 있고…’라고 쓴 즉석 자작 시(詩),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옵고…’로 시작하는 삼귀오계(三歸五戒·재가불자들에게 내리는 계율)를 담았다.

스님의 맏상좌인 덕조 스님은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스님은 불일암에 계실 때 지인들에게 글씨를 많이 내렸고 특히 한글 서예를 즐기셨다”며 “글씨 쓰는 이유를 여쭈면 ‘먹물이 남아서 붓장난 좀 한다’며 부끄러워하곤 하셨다”고 전했다.

이번 전시에는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서옹 스님 등 불교계 원로들의 서예작품 50여 점도 선보인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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