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정이현]독백이 대화가 되는 경이로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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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생 때였다. 1990년대 초반, 하이텔과 천리안 같은 PC통신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다. 그때의 나는 스무 살 언저리의 나이가 버겁기만 해 어떻게 하면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청춘이었다. 학교 강의를 가뿐히 제쳐버린 채 나는 PC통신의 구석구석을 유영하듯 떠돌아다녔다. 채팅방으로, 영퀴(영화퀴즈)방으로, 또래모임방으로. 볕 좋은 오후 꼼짝도 않고 좁은 방 컴퓨터 앞에 쭈그려 앉은 딸내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대관절 그 안에 뭐가 들었기에 종일 그러고 있는 거냐?” 그땐 차마 대답하지 못했지만 이제 나는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이다.

요즘 소셜네트워크라는 말이 유행인가 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이 넘쳐난다. 누구는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기능에 주목하고 또 누구는 정보 공유의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글쎄 이런 논의를 듣고 있노라면 어쩐지 무언가 중요한 점이 간과된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 공간이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어 달 전 트위터를 시작했다.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 개인적 수다를 떠는 용도로만 사용되던 내 트위터는 우연한 기회에 독자들에게 ‘발견’되었고 하룻밤 사이에 수백 명이 나를 팔로(follow)하는 일이 일어났다(팔로어가 되면 내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팔로어가 1000명을 넘어섰다.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사건이기에 처음엔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트위터의 놀라운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만화책을 추천해 달라는 글을 올리자 몇 해 동안 읽어도 모자랄 만큼의 추천 책 목록이 리플로 달렸고, 몸이 아픈 날 링거액을 맞다가 무심코 수액 병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더니 수십 명에게서 쾌차하라는 응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트위터가 이어준 사람과 사람 사이

이 모든 일이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 때문에 처음 대면한 누군가가 “트위터에서 봤는데 링거는 왜 맞으셨어요?”라고 말을 걸어올 때는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는 그를 모르는데, 그쪽에서는 진즉부터 내 일상을 꿰뚫어 봤다니 좀 섬뜩했다. 일상생활의 편린을 트위터에 올리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혹시 내가 사방이 환히 뚫린 유리방에 앉아서는, 몰래 소곤거린다는 착각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밥도 거른 채 급한 원고 마감을 하던 오후였다. 그날의 첫 끼니를 위해 마감을 하다 말고 근처 식당으로 달려갔다. 테이블에 홀로 앉아 나무젓가락을 쪼개다 말고 문득 등줄기가 시려 왔다. 나도 모르게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 다른 이들은 뭘 먹을까요?’라고 입력하자 곧 타임라인이 빼곡해졌다.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며 일한다는 사람, 따뜻한 국물을 든든히 챙겨 먹으라는 사람, 혼자여도 주눅 들지 말고 어깨를 쫙 펴라는 사람. 사람의 목소리가 텅 빈 식당 안에 가득 찼다. 이토록 넓은 지구에 달랑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다.

매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끔 트위터에 글을 쓰곤 한다. ‘유난히 우울한 날이다’ 따위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장을 쓰면서 아무도 안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라도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그가 타인의 삶을 은밀히 훔쳐보러 온 사람이라도 좋다. 코멘트를 남기지 않아도 상관없다. 단 한 명만이라도 그 순간의 내 절실함을 목격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히 고마운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타인의 체온과 닿았다는 기억만으로 우리는 또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외로움 견디게 하는 체온 느끼기

앞으로 트위터를 계속하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소셜네트워크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갈는지 또한 내가 전망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내가 아는 점은 그 도구가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온라인 네트워크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본질은 여전히 인간 사이의 관계와 마음에 바탕을 둔다는 것이다.

어쩌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개인의 단자화가 심해질수록 우리의 고독은 더 깊어져 갈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미니홈피나 블로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넘어서는 또 다른 시스템이 만들어질 게다.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그 옛날 PC통신이 나에게 해주었듯이 사람이라는 섬과 섬을 연결해 준다면,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혼자만의 독백이 문득 대화가 되는 그 경이로운 순간의 기적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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