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표정없이 흘러가는 삶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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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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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권상미 옮김/496쪽·1만3800원·문학동네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삶
인생역전도 극적 사건도 없는데
왜 그토록 힘겹고 버거울까”


가정을 꾸리고, 밥벌이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늙어 가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내는 평범한 삶이다. 인생 역전도 없고, 파란만장한 사건도 없다. 가끔 누군가 떠나고, 아프고, 죽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별일 없이 지낸다. 하지만 그런 ‘보통 사람’들에게도 인생은 힘겹고, 까다롭고, 버겁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지난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다 보면 설명하기 힘든 이 불가해한 삶의 정황들이 좀 읽히는 것 같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을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그려 보여준다. 수학 교사로 정년퇴임한 올리브 키터리지를 중심으로 그녀의 가족, 이웃들의 이야기가 13편의 단편 속에 실렸다. 자극적인 서사나 반전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좀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불륜으로 치달을 법한데 미묘한 감정에 한참을 시름하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가고, 사건이 생길 법도 한데 그저 굴욕을 감수하고 견딘다. 하지만 작가는 조각조각의 에피소드를 통해 삶의 밑그림을 솜씨 좋고 흥미롭게 그려낸다.

‘약국’은 올리브의 남편 헨리와 그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일하는 종업원 데니즈의 이야기. 헨리는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아내 올리브와 달리 모두에게 상냥하고 친절한 약사다. 젊은 여성 데니즈는 성품이나 취향 같은 것들이 헨리와 흡사하다. 헨리에게 퇴근 이후 집에서 바가지에 폭언과 신경질을 일삼는 아내와 보내는 시간이 고통이라면, 출근해서 그만의 작은 세계인 약국에서 데니즈와 보내는 일과는 즐거움 자체다.

2009년 연작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는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밑그림을 그려 보인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2009년 연작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는 잔잔하면서도 흥미롭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밑그림을 그려 보인다. 사진 제공 문학동네
하지만 그는 데니즈에게 남몰래 품은 연모를 겉으로 한 번도 내색하지 않는다. 데니즈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된 이후에도, 아내와의 관계가 위기에 이르러서도, 데니즈가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은연중에 내비칠 때도. 충실하고 고지식한 헨리에게 아내인 올리브를 떠난다는 건 “제 다리 한쪽을 톱으로 썰어내는 것만큼이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한 여인의 울적한 일상을 다룬 ‘피아노 연주자’, 예전의 다정함을 찾을 수 없는 아내에게 지쳐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 ‘굶주림’ 등도 인상적이다. 이들의 일상과 함께 올리브 부부의 삶도 빠르게 흘러간다. 그들의 외아들은 ‘잘난척쟁이’ 여자와 결혼하더니(‘작은 기쁨’) 금방 이혼하고 아이가 둘 달린 여자와 재혼한다(‘불안’). 그 사이 남편 헨리는 뇌중풍으로 쓰러진다(‘튤립’).

올리브 키터리지의 비탄과 상실감에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수록 몰입해 가는 것은 이 소설이 평범하고 소심한 우리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덧없음을 소소한 일상 속에서 간결한 언어로 선명히 그려냈다. 누구에게나 “정말 어려운 게 삶”이라는 것, “너무 늦었을 때에야 뭔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 인생”임을 되새기게 해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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