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거장 몸뒤짐은 기본 부정 땐 6년 응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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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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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정구선 지음/268쪽·1만3000원·팬덤북스

조선시대에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양반 관료사회 진입을 위한 주요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을 뜻했다. 그 가운데서도 매년 평균 1.4명에게만 주어지는 장원을 차지하는 것은 개인은 물론 가문과 고향의 영광이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교육은 어릴 때부터 과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재수, 삼수, 사수가 아니라 수십수를 하는 이가 비일비재했고 지방에서 상경해 공부하는 선비들도 많았다. 과거에 집착하는 조선 사회의 풍경은 명문대를 목표로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매달리는 오늘날의 사회상과 다를 바 없었다. 조선시대의 천거제를 연구한 저자는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폈다.

과거 시험을 치르는 시험장의 풍경은 살벌했다. 시험관들은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응시자들의 옷과 소지품을 일일이 수색했고, 책을 갖고 들어가다 발각되면 최장 6년 동안 과거를 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급제가 주는 달콤한 보상 때문에 부정행위는 근절되지 않았다. 세종 26년 예조의 보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지은 글을 빌리는 행위, 요약집을 몰래 가져가 베끼는 행위 등이 성행했다.

조선 후기에는 기강이 크게 무너졌다. 순조 24년 치른 과거에선 유생들이 시험관과 말을 나누는가 하면 한 사람이 여러 번 답안지를 제출하기도 했다. 치열해진 당쟁은 과거제도의 근간을 위협했다. 집권을 한 당파는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과거가 실시될 때 시험 문제를 미리 내고 모범답안을 작성해 일당의 자제들에게 돌렸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기록도 많이 나왔다. 세조 때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의 다섯 아들은 모두 문과에 급제해 모두가 오늘날의 장관급인 정2품 이상의 재상에 올랐다. 율곡 이이는 13세 때인 명종 3년 진사시 초시를 시작으로 29세 때인 명종 19년 식년 문과에 이르기까지 아홉 번이나 장원에 올랐다. 그가 거리를 지나갈 때면 아이들까지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 지나간다면서 우러러봤다. 김천령 김만균 김경원은 3대에 걸쳐 장원을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

장원급제는 문벌 좋은 가문에서 많이 나왔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전주 이씨가 장원을 가장 많이 배출했고 그 뒤로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여흥 민씨, 청주 한씨, 연안 이씨, 남양 홍씨, 파평 윤씨 등이었다.

장원급제는 출세의 지름길이었지만 장원급제자들이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었다. 세조 7년 문과에서 장원급제한 하숙산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강직한 성품을 지녀 왕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바람에 관직에 오래 있지 못했고 낙향한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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