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뉴턴도 갈릴레오도 16세기 기술자에 빚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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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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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측량 등 실천적 지식 쌓아
17세기 과학혁명의 토대 마련

◇ 16세기 문화혁명/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남윤호 옮김/940쪽·3만6000원·동아시아

16세기에는 복각을 발견한 로버트 노먼처럼 선원 출신들이 직접 도구를 고안하는 일이 많았다. 학습 의욕과 지적 향상심이 충만했던 시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림은 선원 출신의 존 데이비스가 태양을 직접 보지 않고도 고도를 잴 수 있도록 고안한 ‘백스태프’라는 측정 기구. 사진 제공 동아시아
16세기에는 복각을 발견한 로버트 노먼처럼 선원 출신들이 직접 도구를 고안하는 일이 많았다. 학습 의욕과 지적 향상심이 충만했던 시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림은 선원 출신의 존 데이비스가 태양을 직접 보지 않고도 고도를 잴 수 있도록 고안한 ‘백스태프’라는 측정 기구. 사진 제공 동아시아
16세기 영국 런던의 로버트 노먼은 20년 동안 해온 선원생활을 접고 항해용 기구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전형적인 수공기술자(직인)였다. 그는 나침반을 만들 때마다 북쪽을 가리키는 바늘이 수평 아래로 기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당시 측량을 중시하는 수공기술자들의 풍조에 따라 이 각도를 측량하는 도구를 직접 만들어 관측했다. 나침반과 수평면 사이의 각도인 ‘복각’을 학자가 아닌 시장의 기술자가 발견한 것이었다.

노먼의 복각은 1600년 윌리엄 길버트의 ‘지구는 거대한 자석’이라는 대발견의 기초가 됐다. ‘지구의 자력’이라는 관념은 이후 케플러에게 수용돼 천체 간의 인력이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이는 인류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연결됐다.

일본의 재야 물리학자이자 전작 ‘과학의 탄생’(원제: 자력과 중력의 발견)으로 유명한 저자가 유럽의 16세기 지식 생산의 구조를 추적해 “16세기는 과학혁명의 시대인 17세기와 그 이전인 르네상스 시대에 끼인 그늘의 시대가 아니라 기술자 예술가 상인 군인 등 실천적 지식을 중시한 사람들이 라틴어가 아닌 각국의 언어로 과학사의 새 역사를 쓴 문화혁명의 시대”라는 새로운 주장을 펴고 있다.

저자는 17세기 과학혁명의 기초가 된 16세기 예술가 기술자 상인 군인 등 당시로서는 ‘교육받지 못한 자’들의 업적을 문헌을 통해 살폈다. 16세기만 해도 학문은 법학과 신학을 중심으로 전개됐고 이는 라틴어를 배우고 익힌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는 스콜라철학의 영향이기도 했다. 16세기는 이런 엘리트 위주의 학문이 경험과 실천적 지식을 중시하는 기술자들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물질의 연소가 대기 중 산소와 결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규명한 18세기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근대화학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연소 현상에 주목해 실제 정량적인 측정을 시도했던 사람도 16세기 이탈리아 기술자 반노초 비링구초였다. 수학적으로 이론화하는 데 한계가 있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지만 이들의 과학적 태도가 없었으면 17세기 이후 갈릴레오나 뉴턴의 대발견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말이다.

대포가 주력 병기가 되면서 일어난 유럽의 군사기술혁명도 16세기에 시작됐다. 여기서도 대학과는 거리가 먼 기술자와 군인들이 수학적 역학과 기계학을 연구했다. 베네치아의 니콜로 타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그의 탄도학에 영향을 받아 갈릴레오는 등가속도운동(자유낙하)과 포물선운동의 엄밀한 수학적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천문학에서는 30년 동안 별을 관측하며 꾸준히 데이터를 축적한 튀코 브라헤가 없었다면 그의 제자 케플러가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뉘른베르크의 레기오몬타누스는 이론과 관측을 병행한 천문학자로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구의 운동’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16세기의 예술가와 기술자, 상인들은 실험과 측량을 중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당시 학문 분야에서 널리 쓰이던 라틴어가 아닌 대중이 사용하던 각 나라의 언어(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로 성과를 기록해 확산시켰다.

16세기는 길드에 속해 있으면서 내부자들에게만 전승되던 기술이 외부에 공개되기 시작한 시대였다. 1513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은폐돼온 권력의 비밀인 통치기술을 폭로했고, 그 직후 시작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가톨릭의 비밀을 폭로한 것이다. 여기에는 16세기 인쇄술의 발달이 큰 영향을 끼쳤다.

실천적 지식을 중시한 이들은 지식의 공개를 통한 누적적인 진보를 믿었다. 유약을 개발하며 프랑스어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인 16세기 도예공 베르나르 팔리시의 말은 오늘날에도 그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질병이나 기타 해로운 질환에 듣는 훌륭한 치료법은 비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농업의 비법도 감춰져서는 안 된다. 항해의 장애물이나 위험도 은폐되면 안 된다. 하느님의 말씀도 비밀이 되어서도 안 된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모든 과학도 비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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