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박지하]천하대 출신이 본 ‘공부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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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1일 0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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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드라마 '공부의 신'은 과거에는 표현이 불가능했던 2010년의 대한민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드라마 '공부의 신'은 과거에는 표현이 불가능했던 2010년의 대한민국 교육의 자화상이다.

KBS 월화드라마 '공부의 신'은 3류 학교 꼴찌학생들이 폭주족 출신 변호사를 만나 일류대학교에 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생들의 학구열을 높여주는 착한 드라마라는 평과, 학벌위주의 사회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문제작이다.

변호사 강석호(김수로 분)는 무조건 '최고의 대학인 천하대에 가라'고 밀어붙인다.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무시당하는 학교를 일류학교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천하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것이며, 우울한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천하대에 가는 것이라는 주장. 심지어 천하대에 가지 않아도 좋다고 하는 학부모에게 그것은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라고 다그친다.

과연 이런 내용이 공영방송에서 다루기에 적절한 주제일까? 실제 KBS노조는 노사 공정방송추진위원회에 이를 안건으로 올린다고 한다. 교육의 여러 가치에 눈감은 채 '일류대'라는 외길을 강조하고, 주입식 교육이 좋다는 이 드라마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사장의 오만함을 꺾기 위해 공부에 몰두하는 황백현 역의 유승호. 따지고 보면 그에게 공부란 가장 확률 높은 복수 방법이다.
이사장의 오만함을 꺾기 위해 공부에 몰두하는 황백현 역의 유승호. 따지고 보면 그에게 공부란 가장 확률 높은 복수 방법이다.

▶ 비교육적이며 비인간적인 '공부의 신'?

그러나 '공부의 신'은 좋다 혹은 나쁘다고 딱 잘라 평가하기엔 조금 더 복잡한 작품이다.

'공부의 신'은 두 가지 다른 이슈를 동시에 제시한다. 일단 일류대에 가야한다는 순응적인 이슈와, 공부도 못하고 집안도 어렵지만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다는 역전의 이슈도 함께 말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일류대에 가기 위한 공부 방법이라는 이슈이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대목은 역시 역전의 가능성이다.

'공부의 신'은 일본 만화가 원작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비슷한 만큼 한국사회에서도 설득력을 지닌다. 일본판을 보면 '수험이란건 말야, 지금 일본에 남겨진 단 하나의 평등이다' 라는 대사가 있다.

노골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공부의 신'은 교육이 지니는 다양한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지금 점차 약해져가고 있는 하나의 기능, 결국 부모가 대신 치러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치를 수밖에 없는 시험이라는 기회가 가져다주는 역전의 가능성에 집중한다.

1989년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문제작이고 베스트셀러였다. 1990년에는 규율에 억눌린 명문고 학생들에게 자유를 가르치는 키튼 선생님이 나오는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감동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충분히 모범생인 주인공들이 부모의 과도한 기대를 못 이기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2010년,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명문 기숙학교의 도련님들이 해직 교사를 보며 책상을 딛고 'Oh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는 것과 '공부의 신'에서 길풀잎(고아성)과 황백현(유승호)이 천하대에 합격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감동적일까.

10대 청소년들에게 공부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역경을 이겨내며 한단계 성장하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에게 공부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역경을 이겨내며 한단계 성장하게 된다.

▶ 일본판 '공신', "수험이란 일본에 남겨진 단 하나의 평등"

'공부의 신'이 감동적이라면, 이는 우리가 1990년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1980년대의 과외금지 덕에 1990년에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주된 이슈였다. 영화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는 대목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이후 대입의 중심이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면서 고전문학에서 '희곡용어'를 외울 필요도 없고, 거미가 폐서(肺書) 호흡을 한다는 것을 몰라도 대학 가는데 큰 지장이 없어졌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사교육의 팽창으로 교육 이슈는 '입시위주'에서 '수험이라는 기회의 평등'의 붕괴로 옮겨갔다.

어떤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동안 어떤 아이들은 알바를 해서 용돈이라도 벌어야 한다. 교육을 통한 재분배가 아니라 빈곤의 대물림이 나타나는 것이다.

가정형편이 크게 어렵지 않은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교육과 달리 사교육 시장에서는 누군가는 항상 나보다 더 좋은 혹은 더 비싸고 더 희소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애만 뒤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은 당연한 수순. 결국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의 부실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먹고 팽창해간다.

수학 교사로 등장한 차기봉 선생님. 그가 주장한 '암기-주입식 교육'은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학 교사로 등장한 차기봉 선생님. 그가 주장한 '암기-주입식 교육'은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공부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가장 검증된 방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서 교육은 여전히 기회이다.

1996년 막노동일을 하던 장승수 씨가 서울대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쓴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수험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고3이던 필자는 그 잘난 척 하는 제목에 발끈해 책을 집어든 기억이 난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여러 가지 일 중에 공부가 가장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을 바꾸고 싶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그래도 공부가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제 서울대든 고시든 의대든 그것 하나에 합격했다고 평탄한 인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강석호 변호사의 자신만만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천하대를 나와 봤자 그렇게 대단하게 알아주는 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황백현과 길풀잎이 스스로의 인생을 바꾸어보고자 시도할 수 있는 여러 대안 중에서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검증된 방안이다.

'공부의 신'은 그래서 1990년의 드라마가 아니라 2010년의 드라마이다.

2010년의 한국에서 '공부의 신'은 비난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1990년이라면 차마 이런 내용을 드라마로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받지 못했을 지지를 2010년에 받는 이유는 '공부의 신'이 단순히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어쨌거나 우리가 바라는 현실을 한 조각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의 창궐 속에서 의심받고 있는 수험 평등의 기회. 로또를 사는 것 대신 열심히 하면 찾아올 수 있는 인생역전의 기회를 말이다.

사교육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부의 신'은 단순한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다. 동아일보 DB
사교육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부의 신'은 단순한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다. 동아일보 DB

▶ 교육의 현실을 외면한 일종의 '판타지 드라마'

물론 공부의 신은 여전히 문제작이다.

교육은 단순히 공부시키는 것 이상이고, 공부는 입시 이상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공부의 신은 캐릭터 설정을 통해 입시 외의 다른 의제들은 처음부터 끼어들 틈이 없이 발라낸다.

주인공 강석호와 그 반동인물들을 가르는 것은 '교육 철학'이 아니라 단지 '열의'다. 교사 중에서도 정말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로 나오는 한수정(배두나)은 강석호와 티격태격하는 가운데서도 특별반의 부담임을 맡는다. 나머지 의욕상실의 교사들은 단순한 반대세력일 뿐 대안세력이 되지 못한다.

학생들 역시 전교 꼴찌지만 그리 불량하지 않다. 주먹은 좀 쓰지만 다른 아이를 학대하거나 우울하다고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봉구의 샤프를 뺏고 못살게 구는 노란 머리의 '정말 나쁜' 학생은 천하대 특별반에 지원하지도 않는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극적 재미를 위해 도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들이대는 것이 '공부의 신'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10대를 주 시청자 층으로 삼고 있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드라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입시 외에 다양한 교육의 기능을 무시해버린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펑펑 놀다가 좋은 과외선생님 만나서 바짝 공부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퍼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도 과외를 받아도 봤고, 해보기도 했지만 꾸준히 하는 자세, 스스로 하겠다는 마음가짐과 견줄 수 있는 비법은 없다.

좀 지난 일이긴 하지만 과외를 해보면 과외선생님이 와야 공부 하고 단어 외우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야 애타는 마음에 부모가 전 과목 과외를 시켜도 소용없다. 문제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내적인 동기와 공부하는 습관이다.

서울대를 천하대라고 표현하지 못한 \'공부의 신\' .연합뉴스
서울대를 천하대라고 표현하지 못한 \'공부의 신\' .연합뉴스

▶ 천하대 합격자는? 바로 오봉구와 길풀잎

필자가 보기에 성적이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은 오봉구와 길풀잎이다. 누군가가(부모가, 교사가, 제3자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막상 드라마에서는 소홀하게 다루어졌지만, '공부의 신'이 말해주는 요령보다 더 중요한 비법은 '분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계산을 자꾸 틀리는 찬두에게 끝까지 문제를 풀게 하는 이유는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한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틀리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 못하는 것을 스스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너는 못한다는 예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 않기….

이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뿐 아니라 무언가를 잘 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점이다. 더 나아가 조직도 마찬가지이다. 패배주의를 깔고 있는 조직은 무엇에도 성공하기 힘들다.

'공부의 신'에는 원작이 있고, 세상에는 인터넷이 있다. 우리는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아도 결말을 알 수 있다. 누가 입시에 성공하고, 누가 실패할 것인가. 그러나 원작이 있다고 해서 결말까지 같으라는 법은 없다. 한국판 공부의 신은 어떤 결말을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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