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사람은왜]‘초콜릿 복근’으로 여심잡은 ‘추노’ 한정수

  • Array
  • 입력 2010년 1월 14일 14시 08분


코멘트
지난해 안방극장과 가요계에 불어닥친 짐승남-야생남의 바람이 호랑이해인 2010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KBS 드라마 '추노'(극본 천성일 연출 곽정환)가 있다. 병자호란 후 조선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도망간 노비를 뒤쫓는 추노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노'는 방송 3회 만에 2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추노는 그야말로 거친 수컷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팔뚝에 힘줄이 튀어나올 듯한 구릿빛 피부의 남자들이 입은 듯 만 듯 천 쪼가리를 겨우 두르고 묵직한 장검과 창을 휘두르며 야마카시(맨몸으로 빌딩을 오르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는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처럼 벽을 타고 공간을 이동한다.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그간 영화에만 사용해온 고속용 고화질 레드원 카메라로 장대하게 담아진다.

KBS 드라마 ‘추노’에서 추노꾼 최장군 역을 맡은 배우 한정수. 사진=석동율 기자 seokdy@donga.com
KBS 드라마 ‘추노’에서 추노꾼 최장군 역을 맡은 배우 한정수. 사진=석동율 기자 seokdy@donga.com


액션 대작 '추노'는 분명히 '남성 극'임에도 여성들을 200% 배려하는 드라마다. 장혁, 오지호, 한정수, 김지석 등 대부분의 남자 배우가 식스팩과 가슴 근육을 그대로 노출한 채로 나와 여성 시청자들의 눈을 호강하게 해준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마치 할리우드 영화 '300'을 보는 듯하다는 평이 주르르 달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장면은 첫 회에 나온 '목욕 신'이다.

상·하의를 훌러덩 벗어젖힌 최 장군 역의 한정수(37)가 중요 부위만 지게로 겨우 가린 채 역삼각형 상반신과 탄탄한 복근, 치골을 드러내고 목욕을 하는 장면이 방송돼 채널 서핑을 하던 여심(女心)을 송두리째 흔든 것. 큰 주모 역의 조미령은 문밖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훔쳐보다 최 장군과 같은 패거리 대길(장혁)에게 걸리고 만다.

이 한 장면으로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한정수는 식스 팩이 드러나는 '초콜릿 복근'으로 '한국판 제라드 버틀러'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제라르 버틀러는 영화 '300'에서 레오니다스 왕을 연기해 유명한 배우다. 보통 사극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면 목욕하는 장면을 넣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역대 목욕 신은 장녹수나 장희빈 같은 여배우의 몫이었다. 남자 배우가 목욕해서 뜬 적은 '추노'가 처음일 것이다.

"폭발적인 반응에 탈의(脫衣) 장면 더 늘어나 고민돼"

웹진 O2가 장안의 화제, '목욕 신'의 주인공 배우 한정수를 만났다.

막상 마주한 그는 드라마 속 거친 남성이 그대로 브라운관 밖으로 걸어나온 듯했다.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맨 흐트러진 긴 머리에, 수염이 잔뜩 자란 얼굴. 안정적인 저음의 목소리까지 최 장군 그대로였다.

한정수는 '추노' 첫 방송이 나간 주말 내내 검색어 2위에 올랐다. 1위가 강적 '청순 글래머' 신인 모양이었던 것을 보면 1위 같은 2위인 셈이다. 그는 "갑자기 많은 사람이 연락을 해서 얼떨떨하긴 했는데 실감은 안 난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본 사람들도 그의 미니홈피 등에 들어와 응원 글을 남긴다고 한다.

별안간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2002년 연예계에 데뷔해 2003년 영화 '튜브', 2004년 '얼굴 없는 미녀', 2006년 '해바라기'로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쌓아온 배우다. 드라마도 2007년 KBS '마왕', '한성별곡', SBS '왕과 나'를 거쳐 2008년에는 SBS '바람의 화원'에서 주인공 윤복이(문근영)의 요절한 아버지 역할을 했었다.

도망친 노비 업복이(공형진) 일가를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대길은 왕손, 최장군과 함께 노비사냥에 나선다. 대길 패거리는 압록강변 여관에서 국경을 넘으려던 업복이 일가를 찾아낸다. KBS 제공
도망친 노비 업복이(공형진) 일가를 잡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대길은 왕손, 최장군과 함께 노비사냥에 나선다. 대길 패거리는 압록강변 여관에서 국경을 넘으려던 업복이 일가를 찾아낸다. KBS 제공


'한성별곡'에서도 같이 작업했던 곽정환 감독은 그에게 따로 '영화 300에 나오는 전사 몸매를 만들라'는 주문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이 시작되던 지난해 8월 대본을 받아 들고 깜짝 놀랐다고.

그는 "그래도 연기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찍는다고 했는데 막상 방영되고 이런 반응들이 나오니까 오히려 부담이 되더라"고 말했다.

혹 곽 감독이 다음에 더 벗길까 두려운 걸까? 기자의 농담에 그는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고 말했다.

"굳이 제가 벗을 필요 없는 장면인데, 감독님 눈치는 벗길 원한다. 방송 나가고 부담이 생겼다. 엊그제도 촬영하는데 대길이(장혁)랑 저랑 왕손이(김지석)랑 셋이서 자는데, 남자들끼리 옷을 벗고 잘 리도 없지 않나? 다들 옷을 입고 있어서 저도 옷을 입고 세트에 들어섰다. 그런데 감독님이 '옷 입고 자려고?' 하는 거다. 그 한 마디에 '아, 아니죠'하고 냉큼 옷을 벗었다. 생뚱맞게 저 혼자 옷 벗고 이불도 안 덮고, 그렇게 그날도 탈의했다. 게다가 세트가 굉장히 춥다. 바깥하고 똑같은데…."

'장군 언니, 대체 비결이 뭐유?'

인터넷에 그의 복근을 찬양하는 기사가 올라오면 꼭 붙는 댓글이 있다. '대체 비결이 뭐요?'

그는 "농구, 축구, 야구 가리지 않고 좋아하고 즐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지는 15년 됐다. 열심히는 안 하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한다. 열심히 하는 날은 4시간. 평상시에는 2시간이다. 운동도 그렇지만 먹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습관이 됐지만 웬만하면 탄수화물 안 먹고 야채를 먹어도 소스 덜 먹고 열량이 낮은 걸로 먹는다"고 말했다.

마치 대학 수석 합격생의 뻔한 공부 비법을 듣는 것 같지만, 쉬운 길은 없단다. 가볍게 시작해서 일주일에 2번 이상 2시간 정도 6개월만 꾸준히 하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오고 그때부터 운동이 즐거워져서 누가 말려도 하게 된다고 한다. 한정수의 권유로 근육계에 입문한 배우 김주혁, 이규한에게 처음 한 얘기도 "절대 열심히 하지 마라. 시작은 설렁설렁 해라"였다. 김주혁과 이규한은 이제는 엄청난 '복근남'이 됐다.

그는 '한국의 제라르 버틀러'라는 별명에 대해선 "정말 멋있는 분이고 남자들이 봐도 반할만한 배우라 감사하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몸이 많이 안 좋아지신 것 같아 안타깝긴 하다. 요즘 운동 많이 안 하나 보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KBS 수목드라마 ‘추노’에서 조선 최고의 추노꾼인 추노꾼인 대길(장혁),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 KBS 제공
KBS 수목드라마 ‘추노’에서 조선 최고의 추노꾼인 추노꾼인 대길(장혁), 최장군(한정수), 왕손이(김지석). KBS 제공


"복근은 장혁이 최고. 오지호는 타고난 장사 체질"

그에게 자신을 제외하고 '추노' 출연자들의 몸짱 서열을 매겨달라고 했다. 그는 "부분별로 하면 복근 쪽은 장혁이 제일 좋은 것 같고, 전체적인 벌크나 골격, 팔 어깨는 오지호"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관노비 송태하 역의 오지호는 기본 골격 자체가 대단히 큰 타고난 '머슴 체질' 혹은 '장사 체질'이라고. '황철웅' 이종혁 역시 군살이 별로 없는 좋은 몸매이고, 같은 추노 패거리 김지석도 트렌드에 맞는 회리호리하면서도 잔 근육이 잘 잡힌 예쁜 몸매인데 드라마에 워낙 몸이 좋은 사람이 많아서 부각이 덜 된다고.

한패로 나오는 장혁, 김지석에 대해선 "어리지만 정말 독한 놈들"이라고 평했다.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대길 패거리는 새벽 5시에 시작해 해질 때까지 찍어도 NG 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장혁은 워낙 성실하다.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열정' 그 자체다. 24시간 배역에 꽂혀서 몰입한다. 김지석은 반대로 노하우가 있어서 자기가 해야 할 부분은 120% 이상 해 내는 스타일이다. 다들 장난이 아니었다. 사적으로 우리 셋이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 지석이는 자주 '보고 싶어요' 애교 문자도 보낸다. 하지만 '슛' 들어가면 서로 거의 한마디도 안 한다. 리허설 때까지 절대 자기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굉장히 연기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오지호, 이다해 씨 쪽은 제작진이나 연기자나 정말 화기애해한 분위기더라."

완성도 높은 액션 연기를 위해 추노 팀은 촬영 3개월 전인 지난해 5월부터 액션 스쿨에 다녔다. 평소 액션 욕심 많은 것으로 유명한 장혁은 절권도를 10년 이상 수련해서 지금은 사범 자격까지 있다. 그의 무술 실력은 배우라기보다는 스턴트맨 수준이다. 김지석도 야마카시를 완벽하게 마스터 했다.

한정수 역시 주특기인 장창과 봉을 숙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지금까지 주로 거의 맨손 격투, 검, 채찍을 다뤘는데 봉이나 창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서 고생했다. 봉은 회전이 계속 있어야 한다. 찌르고 빼고 돌리고 또 돌리고. 움직임이 멈추면 안 되기 때문에 봉 연습하는 데 고생을 많이 했다. 차에 항상 봉을 가지고 다녔다. 집에서도 연습하고 긴 것만 보면 계속 돌렸다."

2009년 12월 21일 있었던 KBS드라마 ‘추노’ 제작발표회. 조선시대 도망간 노비를 수색하여 연행해 오는 것을 일컫는 뜻인 드라마 ‘추노’는 장혁과 이다해, 오지호, 공형진, 이종혁, 한정수 등이 출연한다. KBS 제공
2009년 12월 21일 있었던 KBS드라마 ‘추노’ 제작발표회. 조선시대 도망간 노비를 수색하여 연행해 오는 것을 일컫는 뜻인 드라마 ‘추노’는 장혁과 이다해, 오지호, 공형진, 이종혁, 한정수 등이 출연한다. KBS 제공


밑바닥 삶, 그래서 '추노'가 좋다

'추노'는 조선 중기의 시대상과 다양한 인간군상을 풍자한다. 첫 회에서는 60대 양반이 13세 노비 아이와 잠자리를 하려는 장면, "방노(房奴)의 일로 심산하여 분노가 종횡무진 하더니 이리 추쇄하여 다행일세(도망간 노비 때문에 화가 나 눈물 날 지경이었는데 그나마 잡아서 다행)"라며 기생을 끼고 알아듣지 못할 한자어로만 대화하는 양반들을 비꼰다.

대학 재학시절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경도됐던 경제학도였던 한정수는 밑바닥 처절한 인생을 다룬다는 점에서 '추노'가 좋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곽 PD와도 잘 맞는다고.

"보통 사극이라고 하면 주로 왕족, 귀족 얘기다. 그러나 '추노'는 서민이나 노비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정말 좋았다. 처음 추노 공식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한 분이 '정초부터 재수 없게 노비들 얘기냐?'라는 글을 올렸다. 그래서 바로 '그런 당신은 왕족이냐?'며 강하게 반박 글을 썼다. 그리고 엔터를 눌렀는데 닉네임이 아니라 본명이 나오는 바람에 (제작진에 민폐가 될까봐) 지우고 말았다. 내가 추노 출연자가 아니었다면 그냥 두었을 거다."

"혜수 누나 사로잡은 유해진 선배는 행운아"

한정수는 '한성별곡', '왕과 나', '바람의 화원' 등 주로 사극에 많이 출연해 사극 전문 배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연예계에서 그를 주목받게 한 계기는 김혜수의 첫 베드신 상대가 된 영화 '얼굴 없는 미녀'다. 이 영화는 당시 글래머 스타 김혜수가 처음으로 노출 연기를 했다고 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당시 저는 신인이고 상대배우가 톱 여배우다 보니 엄청나게 부담이 됐다. 그런데 김혜수 선배가 편하게 해줘서 찍을 때는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었다. 촬영 전에는 웃긴 얘기로 분위기를 띄워 주고, 극 중 연인관계로 나왔기 때문에 제 무릎에 앉아서 장난치고 무리 없이 연기할 수 있게 많이 배려해 줬다. 유해진 선배가 굉장히 부럽다. 김혜수 선배는 인간적으로나 배우로나 정말 좋은 분이다."

'왕 언니' 최 장군, 그리고 한정수

최 장군은 추노에서 '왕 언니'로 불린다. 조선시대에 '언니'라는 호칭이 남녀 구분없이 동성의 손윗사람을 부르는 말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김지석은 사적으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장군이 언니"라고 한다.

사실 '장군'이라는 이름에는 아픔이 있다. 극 중 최 장군은 21년간 무과 과거시험만 봤는데 떨어졌다. 가장이 21년을 허송세월했으니 가정이 어땠을까. 부인은 도망가고 아이들을 굶어죽고 풍비박산 났다. 우연히 대길이를 만나 추노꾼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최장군은 예전에 가정이 깨진 경험이 있어서 새로운 사랑을 하는데 주저한다.

73년생인 한정수도 아직 미혼이다. 극 중에서는 큰 주모, 작은 주모 할 것 없이 여인네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실제로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단다. 실제 그의 카페나 미니홈피에 들어가 보면 "형님, 올해는 결혼하십시오"라는 남자 팬의 글이 많다. 그의 마지막 연애는 2년 전이란다. 올해는 꼭 연애를 하고 싶다는 한정수의 이상형은 어떤 여성일까.

"저와 반대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외모도 강하지 않고 키도 작았으면 좋겠고 동글동글하고. 이다해 씨요? 이다해 씨도 동양적이고 예쁘신데 눈이 좀 작았으면…. 귀엽고 착한 사람. 예전에 만나던 사람도 그랬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