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마스타] 여성뮤지션의 발견 ‘옥상달빛’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4일 13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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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싱어송라이터 부진의 이유
'옥상달빛'의 데뷔앨범 '옥탑 라됴'

오늘은 작지만 의미 있는 두 가지를 얘기할까 합니다.

난세에 핀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명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와 이제 10여년을 맞이하는 대학의 대중음악교육에 대해서 말입니다.

필자도 나름 일찌감치 음악에 뜻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 무렵에 제가 택한 전공은 조금은 엉뚱한 심리학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옥상 달빛’은 2008년 유재하 음악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은 박세진(26)과 TV 다큐멘터리 ‘그리스’의 음악을 맡았던 김윤주(26)로 이뤄졌다.
‘옥상 달빛’은 2008년 유재하 음악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은 박세진(26)과 TV 다큐멘터리 ‘그리스’의 음악을 맡았던 김윤주(26)로 이뤄졌다.


이유는 비교적 간단한데,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악대학이란 클래식 전공자의 독무대였습니다. 대중음악인에게 문호가 열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가기 위해서 다른 전공을 물색했던 것이죠.

그런데 불과 십년 사이에 십여 개의 대중음악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보통 '실용음악'이라는 명칭을 갖고 탄생했는데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명칭이기 때문에 저는 '대중음악대학'이라고 표기하겠습니다. 게다가 클래식이 비실용적이란 생각도 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이를 통해 10여 년간 적지 않은 대중음악인들이 배출됐습니다.

▶ 10년간 우후죽순 생겨난 대중음악 대학

그런데 이 학과에서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까요.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음악공부를 위한 자료가 부족해 동네 악기사에서 외국 비디오를 어렵게 곁눈질해야 했습니다. 대개 교회 성가대나 학원에서 시작한 기타와 드럼을 이론적으로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독학을 마다하지 않았죠.

그런데 제도권 기관이 생겨난 것입니다. 대중음악이란 배운다고 실력이 향상된다는 보장이 없는 전형적인 예술분야입니다. 더구나 대중음악이란 분야는 음악 자체에 대한 이론보다 폭넓은 인맥과 독특한 감수성에 기반한 시장에서의 성공이 더 중요한 특수 분야이기도 합니다(일례로 가수 '비'가 경희대 실용음악학과에 입학한 사례가 있습니다).

어찌됐건 음악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교회와 집안 구석에서 기타치고 드럼치고 노래하던 가락을 이어 2년제이든 4년제이든 대중음악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학기당 등록금이 5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백만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고급화 됐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학생입장에선 음악을 오래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이자 승부수일 수도 있습니다. 음악인이라는 '꿈'과 대학졸업이라는 '현실' 사이를 메워가기 위해서 말이죠.

실용음악을 표방한 다양한 제도권 교육과정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실용음악을 표방한 다양한 제도권 교육과정이 생겨나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저 역시도 이 흐름과 그리 머지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지난 십여 년간 서울예술대학과 동아방송예술대 그리고 경희대 포스트모던과 등 수많은 대중음악과 출신 연주자들을 만나 협연하고 머리를 맞대어 조금 더 색다른 음악활동을 모색해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 대학들 덕분에 대졸 출신 음악인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한동안 고졸 출신이 대부분인 음악 판이 많이 바뀐 거지요. 전문가들도 급증해 국내 대중음악을 이끌어가는 전문 인력이 상당부분 육성된 셈입니다. 때문에 제도권 교육에 대해 비관적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어찌됐건 교육을 하고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으니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신기하게도 음악인은 늘어났지만 진짜 가수들은 갈수록 희귀해진 것이죠. 자기의 이야기를 하며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는 더 줄어들었습니다. 아직은 직업으로 음악을 하기보다는 한때의 화려한 청춘의 소나기처럼 음악활동을 접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 입니다.

▶ 그럼에도 너무도 부족한 여성 뮤지션

또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급증한 대중음악 전공자에 비해 배출되는 여성 뮤지션들은 너무나도 적다는 사실입니다.

일견 여성 뮤지션이 적다는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분들도 많을 수 있을 듯합니다. '원더걸스'나 '소녀시대' 같은 걸 그룹의 전성기를 맞이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가 말하는 '가수'란 프로듀서가 선택해서 음악활동의 앞과 뒤를 애기 돌보듯이 세심하게 관리해 무대에서 노래와 춤만 선보이는 '가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악상과 생각을 악보로 옮겨 자신의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을 가수라고 말하는 거죠.

더구나 여성뮤지션들 가운데 진심으로 소박하게 시작해 거장으로 성장해 가는 여성 뮤지션을 찾아보기란 더 어렵습니다. 필자가 1년간 해왔던 싱어송라이터들과의 합동 공연에서도 여성뮤지션의 비율은 차마 숫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희귀합니다.

‘옥상달빛’의 음악은 출시와 동시에 MBC 드라마 ‘파스타’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옥상달빛’의 음악은 출시와 동시에 MBC 드라마 ‘파스타’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아쉬운 일입니다. 우선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결혼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겠죠. 여성 음악인 역시 남성보다는 현실적이고 결혼이 주는 의미가 다릅니다. 데뷔앨범을 듣고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아주 좋은 음악을 들려줄 것 같았던 친구들이 서른 즈음이 되면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동네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거나 직업보다는 취미로 노래를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네트워크가 약해 시장에 대응하는 전략도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여성의 경우 좋은 아이템을 앨범발매와 공연으로 이어가가 힘듭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생활음악인이 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될 수 없습니다.

▶ 가뭄 속의 단비 '옥상 달빛'

그 와중에 최근 좋은 여성 음악친구를 만났습니다.

최근 십년간 생긴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며 내공을 쌓은 두 친구입니다. 이들은 '옥상달빛'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동아방송대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2008년 유재하 음악가요제에서 장려상을 받은 박세진(26), 그리고 TV 다큐멘터리 '그리스'의 음악을 맡았던 김윤주(26)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홍대 거리공연 프리마켓에서 시작해 2010년 벽두에 첫 번째 데뷔앨범 '옥탑라됴'를 내놓았습니다.

1984년생 동갑내기들은 대중음악대학에서 받은 교육을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데 잘 활용한 신예 음악인들입니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는 주목할만한 여성 뮤지션인 셈입니다.

간소하기가 절간 나물밥상과 같은 '옥상달빛'의 음악은 출시와 동시에 MBC 드라마 '파스타'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든든한 사무실과 유력한 후원자가 없는 입장에서는 이것 하나로도 음악인생에 재미꺼리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소녀가수 출신의 대표 격인 하춘화 씨 같은 '대중음악 조기교육'이 결실을 맺으며 자기노래가 없는 고목나무 같은 지금의 오버, 언더그라운드에 자그마한 꽃들이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 조촐한 밥상은 둘만의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Musicstrawberry Sound'라는 레이블로 이들을 발굴한 '올드피쉬'라는 가수가 있었고, 이들과 2010년의 행보를 맞추며 격려하는 '하이 미스터 메모리'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할 줄 아는 선배의 안목. 중요한 선배 된 도리이겠지요.

게다가 이창희 대표(m.net 출신의 레이블사장님)의 'mirrorball music'이 발 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아서라이그'와 두부세모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 박 호의 'money vux'도 미러볼뮤직에서 판매와 유통 그리고 홍보를 해주고 있습니다. 21세기 음악시장의 '품앗이'이고 '두레'입니다.

이런 전문 인력들의 상부상조 속에 8곡이 수록된 앨범은 발굴된 진주가 투명한 색채를 뿜는 듯한 음악을 담았습니다. 좋아하는 뮤지션으로 윤상과 유희열을 꼽았으니 이들의 음악색채 또한 쉽게 상상이 됩니다. 소소한 일상의 가사를 많이 쓰고 사랑보다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옥상달빛의 등장은 대중음악교육이라는 새로운 공기와 햇빛 속에서 자란 신세대의 등장이자 이들의 도전이 계속돼야 하는 하나의 이유다.
옥상달빛의 등장은 대중음악교육이라는 새로운 공기와 햇빛 속에서 자란 신세대의 등장이자 이들의 도전이 계속돼야 하는 하나의 이유다.


▶ 열악한 현실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

'하드코어 인생아'와 '옥상달빛' 그리고 'another day'와 같은 기존의 라이브에서 선보였던 곡들 외에도 앨범 작업에서 빚어진 '안녕', '옥탑라됴', '외롭지 않아', '가장 쉬운 이야기', 그리고 드러머출신에서 싱어송라이터로 탈바꿈해 자우림의 드러머 구태훈과 데뷔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이천수 '무중력소년'이 감탄했던 바로 그 곡 'good-bye'가 마지막을 장식해줍니다.

라이브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뮤지션들 중에 좋은 느낌의 앨범마저 가진 이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열악한 음반제작의 현실 속에서 마치 얼마 전에 보았던 크리스마스트리 맨 위에 걸려있는 별과 같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노래] '하드코어 인생아'

뭐가 의미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축 쳐진 내 어깨 위에 나의 눈물샘 위에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걸 인생아

좀 거친 제목 속에 담긴 이 노래는 처음 듣는 순간 한대수의 '바람과 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사를 들어보면 '20대 두 여성에게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젊은 날의 생채기가 느껴집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치료를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자아의 발견을 위해 음악을 한다는 옥상달빛의 이 음반을 끝까지 들으며 이들의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대중음악교육이라는 새로운 공기와 햇빛 속에서 자란 옥상달빛의 음악이 계속돼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선배라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셈입니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칼럼니스트 sereeblue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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