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하정규]충격적이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용서는 없다’

  • Array
  • 입력 2010년 1월 14일 13시 47분


코멘트
범죄와 복수는 영화가 그려내는 영원한 테마 중 하나다.

복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감정이며, 따라서 관객들이 공감하고 몰입하는 정도도 자연스레 높아지게 된다.

영화 '용서는 없다'는 '살인의 추억'과 같은 범죄스릴러물이면서, '올드보이'적인 복수를 그려내고, 아울러 '추격자'와 같은 잔인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범죄스릴러의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여러 영화를 짜깁기한 느낌을 주면서 '창의성의 부족'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암초에 걸려 좌초되고 말았다.

‘용서는 없다’에서 부검의학 교수 강민호와 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성호 역을 맡은 설경구와 류승범. 두 배우의 연기는 나무랄데 없었지만 여러 영화들을 짜깁기한듯한 구성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용서는 없다’에서 부검의학 교수 강민호와 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성호 역을 맡은 설경구와 류승범. 두 배우의 연기는 나무랄데 없었지만 여러 영화들을 짜깁기한듯한 구성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 토막 살인과 딸의 납치

철새도래지인 금강 하구언에서 토막 난 여자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사라진 한쪽 팔만을 제외하고 토막 난 머리와 몸통, 팔, 다리가 모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사건 수사에 참가한 신출내기 여자 형사 민서영(한혜진 분)은 범죄 현장에서 이 사건의 부검을 담당하게 된 강민호(설경구)를 만나게 된다. 그는 민서영이 경찰대학 시절 존경했던 부검의학 교수이다.

초짜 형사로 고참의 구박을 받는 와중에서도 민서영은 자신이 읽은 금강 하구언 생태와 관련된 책에서 살인사건의 단서들을 발견하고 이 책의 저자인 환경운동가 이성호(류승범)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한다. 이성호는 죄를 순순히 자백하고 체포되지만 경찰은 유죄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시신을 부검하던 강민호 교수는 수 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오는 딸을 만나러 공항에 갔다가 웬 남자가 건네준 봉투 속에서 자신의 딸이 납치되어 묶여 있는 사진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납치된 딸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는 그는 이성호로부터 자신이 딸을 납치했으니 자신을 무죄 석방시켜 주면 딸을 풀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 '인썸니아'를 떠올리는 구성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유사한 영화들이 떠올랐다. 특히 전체 스토리 구성상 가장 유사한 할리우드 영화는 '인썸니아'다.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파견된 유능한 베테랑 형사가 범인을 추격하는 와중에 자신의 비리를 알고 있는 동료를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되고, 이 장면을 목격한 범인과의 은밀한 거래와 추격을 함께 하는 내용이 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와 전반적으로 유사하다.

특히 이 형사를 존경하는 신출내기 여자 형사가 책 내용을 단서로 추리소설 작가인 진짜 범인을 추리해 내고, 다른 동료들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형사의 비리와 범행을 찾아내게 되는 점, 주인공 형사가 범인과의 거래를 위해서 범죄 증거물들을 숨어서 조작하다가 증거를 찾는 경찰들과 맞닥뜨리는 모습 등은 영락없이 이 영화의 전개와 맞아 떨어진다.

범죄 스릴러물 ‘용서는 없다’는 전체 스토리 구성이 할리우드 영화 ‘인썸니아’와 너무나 비슷하다.
범죄 스릴러물 ‘용서는 없다’는 전체 스토리 구성이 할리우드 영화 ‘인썸니아’와 너무나 비슷하다.


비교적 탄탄한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다. 그 밖에도 관객들이 '용서는 없다'를 보면서 이와 비슷하다고 떠올릴 만한 영화로는 '세븐데이즈' '모범시민' '올드보이' 등이 있겠지만, 특히 충격적이고 잔인한 반전과 결말은 미국 영화 '세븐'을 많이 생각나게 한다. 결국 범죄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을 살린 스릴 있고 박진감 있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관람하는 내내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이라는 찜찜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 억지스럽고 과잉친절한 대사들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 등 주연급 배우들의 캐릭터와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문제는 조연인데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 등 뛰어난 범죄스릴러들과 비교할 때 조연 캐릭터와 대사의 디테일은 많이 떨어지는 아쉬움을 보여준다. 특히 초짜 형사 민서영을 구박하는 윤종강(성지루)의 지나치게 단순무식 일변도의 대사는 많이 거슬린다.

"이 촌구석에서 살인사건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고, 커피나 타라면서 여자 형사를 계속 구박하고, 오로지 무대포식으로 범인을 취조하는 모습은 '살인의 추억' 류의 영화가 보여준 시골 형사의 모습을 재연하면서도 그 형태가 너무 조악하고 식상하다.

그 외의 조연 및 단역들의 캐릭터와 대사들도 영화의 진행을 위해 억지스럽게 갈등을 만들어냈다는 느낌을 준다.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조연, 단역에 이르기까지 캐릭터와 대사의 짜임새 있는 디테일이 필수적인데 이런 점에서 미흡한 느낌이다.

충격적인 마지막 반전 부분이 이 영화의 백미이지만, 이 장면들에서도 과잉 친절한 대사들은 영화의 수준을 깎아 내린다.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용서하는 거예요"라는 이성호의 대사나 이성호를 총으로 쏜 후에 "이성호는 이것을 원했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강민호의 대사는 영화 '세븐'의 결말을 신파조로 만든 인상을 준다.

‘용서는 없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소는 과잉 친절한 대사들이다. 특히 이성호를 총으로 쏜 후에 “이성호는 이것을
원했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강민호의 대사는 영화 ‘세븐’의 결말을 신파조로 만든듯한 인상을 준다.
‘용서는 없다’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소는 과잉 친절한 대사들이다. 특히 이성호를 총으로 쏜 후에 “이성호는 이것을 원했겠지만 어쩔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강민호의 대사는 영화 ‘세븐’의 결말을 신파조로 만든듯한 인상을 준다.


▶ 창의성과 디테일의 중요성

다소 끔찍하지만 여자 시신을 세밀하게 부검하는 모습, 토막 난 시신을 '금강의 비너스'라는 주제로 추리하는 모습,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마지막 반전 등은 이 영화가 나름대로 보여주는 인상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추격자' 등으로 이미 한껏 높아진 범죄 스릴러물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기대치는 여러 영화를 짜깁기한 느낌을 주는 이런 정도의 완성도로 만족시키기 어렵다.

좋은 영화의 기본은 창의성과 디테일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든 영화이다.

칼럼 더보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