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 “알래스카는 우리 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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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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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의원 당선된 원주민 저자
美연방정부와 벌인 투쟁 담아

이누피아트들의 삶은 소박했다. 연어를 훈제하고, 물범기름을 정제하고, 순록고기를 말리며 아홉 달의 겨울을 준비했다. 그러나 날로우르미트들이 들어온 뒤 이들의 전통과 삶의 지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진 제공 문학의숲
이누피아트들의 삶은 소박했다. 연어를 훈제하고, 물범기름을 정제하고, 순록고기를 말리며 아홉 달의 겨울을 준비했다. 그러나 날로우르미트들이 들어온 뒤 이들의 전통과 삶의 지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진 제공 문학의숲
◇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이레이그루크 지음·김훈 옮김/336쪽·1만2800원·문학의숲

이레이그루크. 저자의 이름이 낯설다. 이누피아트(알래스카 북부 이누이트 족)식 이름이다. 그의 고향, 알래스카 코체부에 만은 날짜변경선에서 동쪽으로 불과 80km 떨어진 곳이다.

1941년에 태어난 저자에게는 윌리엄 헨슬리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날로우르미트(백인 등 외지인을 가리키는 이누피아트 말) 선교사들이 알래스카 원주민을 개종시키면서 영어식 이름을 지어주기 시작해 당시에는 이미 영어식 이름을 따로 짓는 문화가 정착돼 있었다. 이누피아트이면서도 영어식 이름을 가져야만 하는 현실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처했던 운명을 보여 준다.

책은 알래스카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공부한 뒤 알래스카 원주민을 위한 권리 찾기에 나섰던 저자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원주민 고유의 삶과 문화를 기록한 책이자, 날로우르미트의 시각이 아니라 이누피아트의 시각으로 쓴 알래스카 역사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상점 진열대 맨 앞에 나와 있던 캔디바는 저자에게 참을 수 없는 ‘바깥의 유혹’이었다. 대가는 컸다. 이가 모조리 썩어 심한 치통을 겪었다. 날로우르미트들이 들여온 술을 마시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통받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던 이누피아트 어른들의 모습이 겹친다.

사냥과 낚시로 생존을 이어가는, ‘석기시대의 황혼’ 같았던 저자의 어린 시절은 학교를 진학하며 점점 흐릿해진다. 저자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마다 학교 수업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1890년대 말부터 원주민 학생들은 학교에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고 밸런타인 성찬을 마련하며 미국식 삶을 익혔다. 유난히 책을 좋아하던 저자는 15세가 되던 해, 미국 테네시 주로 유학을 떠난다. 1950, 60년대를 미국에서 지내며 흑인인권운동을 지켜본 그는 고향 알래스카의 현실에 점차 눈을 뜬다. 보호구역 내에서 ‘관광자원’으로 살아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은 곧 알래스카 원주민의 미래였다.

유럽 개척자가 신대륙을 ‘발견’했기 때문에 권리를 가진다는 논리는 알래스카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특히 알래스카가 주로 승격하면서 연방정부는 주정부에 세원을 마련하도록 주 소유의 땅 42만 km²를 고를 권한을 부여했다. 그 땅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권리는 무시됐다.

저자는 1966년 11월 25세의 나이로 알래스카 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원주민들의 토지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을 주도해 나간다. 친구들이 집에 초대하면 방바닥에 쓰러져 곯아떨어질 정도로 바쁘게 생활하길 5년, 마침내 1971년 원주민들에게 알래스카 땅의 16%에 해당하는 땅을 배정하고 나머지 땅을 포기하는 대신 9억6250만 달러를 지불한다는 법안이 통과된다.

세월이 흘러 저자는 알래스카 사회의 원로가 됐다. 그는 이제 100년이 넘도록 전통과 문화를 부정당한 채 열등하다는 자기비하에 시달려야 했던 알래스카 원주민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고유의 언어 구사, 자연에 대한 외경심, 뛰어난 사냥 솜씨…. 이누피아트 일리트쿠세이트(이누피아트의 정신 혹은 소중한 특성들)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며 저자는 때때로 힘을 얻기 위해 외친다. “아아리가아 이누우루니! 나쿠우루크 마니 누나!(살아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여기는 좋은 곳이야!)”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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