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류의 진화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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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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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제로/로버트 라이트 지음·임지원 옮김/688쪽·2만5000원·말글빛냄

생물학적 진화, 문화까지 연장 “역사엔 뚜렷한 방향성 있다”
문화의 복잡성 진화로 설명 “상호이득 위한 쌍방소통 필수”


“인류 역사에는 아주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 그것은 ‘넌제로섬(nonzero sum)’의 원리에 따라 쌍방이 이익을 얻으며 발전하는 쪽으로 흘러간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전작 ‘도덕적 동물’(2003년 국내 출간)로 유명한 저자는 이 원리가 생명체의 생물학적 진화와 인류의 문명 발전을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는 틀이라고 역설한다.

게임이론 용어인 넌제로섬은 어떤 결과가 제로(0)가 아니라는 의미다. 저자는 게임이론을 차용해 인류 문명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다. 그는 제로섬 게임과 넌제로섬 게임의 기본적인 차이를 밝힌 존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이 유전자(DNA)의 기본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못지않게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속에는 미토콘드리아가 핵 속의 유전자와는 다른 별도의 유전자를 가지고 존재한다. 태초에 개별 존재였던 미토콘드리아가 세포호흡을 담당하는 세포의 소기관의 모습을 갖춘 것은 저자가 말하는 넌제로섬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각자 개별 세포로 존재할 때보다 쌍방이 얻는 이득이 많아 이뤄진 결과라는 것이다. 개별 세포뿐만 아니라 개미들의 협력이나 사냥에서 돌아온 협력 박쥐가 피를 토해 동료를 먹이는 행동도 모두 넌제로섬의 틀 안에 들어 있다.

원시부족부터 현대에 이르는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도 상호 이득을 위한 넌제로섬의 과정이다. 1970년 아폴로 13호선에 승선했던 세 명의 우주 비행사가 좌초된 우주선을 지구로 몰고 오기 위해 협력했을 때는 물론이고 부족, 기업, 국가의 탄생이 모두 넌제로섬의 렌즈로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이런 경향성은 복잡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저자는 문화의 복잡도를 계량화한 로버트 카이네로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문화에도 진화 단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개별 문화권은 대도시를 갖기 전에 사원과 법률, 거래, 사제, 수공업의 분화 등을 먼저 경험한다.


제로섬과 달리 넌제로섬 게임에서는 쌍방 간에 소통이 필수적이다. 상호 이득의 교집합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것이다. 세포는 이를 화학적 신호와 유전자를 통해 해결하고 인류는 문자와 정보 기술로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한다. 저자는 문자는 물론이고 화폐도 특정 대상에 대한 ‘가치 정보’를 내포하면서 넌제로섬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결론에서 문화와 생물의 진화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며 충분히 긴 시간이 주어지면 궁극적으로 행성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조직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은 담론의 규모 면에서 지구를 살아 있는 유기적 시스템으로 바라본 제임스 러브록의 저작 ‘가이아’를 연상시킨다. 저자는 부록을 통해 포지티브 섬(positive sum)이 아닌 넌제로섬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넌제로섬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도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비열한 사람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넌제로섬 상황은 네거티브 섬(negative sum)보다는 포지티브 섬을 지향해 왔다고 주장한다.

넌제로섬의 경향은 그 결과가 정해진 운명론은 아니다. 진화의 문턱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확률은 상존한다. 이러한 여지 때문에 인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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