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뇌는 마구잡이로 진화한 ‘비효율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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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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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 진화’의 과정에서 좌뇌 피질은 서사성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인간은 인과성이 결여된 꿈에서도 서사적인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런 비이성적인 서사의 경험이 종교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바탕이 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진 제공 시스테마
‘땜질 진화’의 과정에서 좌뇌 피질은 서사성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인간은 인과성이 결여된 꿈에서도 서사적인 구조를 만들어 낸다. 이런 비이성적인 서사의 경험이 종교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바탕이 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진 제공 시스테마
사랑-기억-꿈 등 인간적 특성
불완전하고 엉성한 뇌구조 탓

고도의 정신기능 가능한 것은
500조개 ‘배선회로’ 시냅스 덕


◇우연한 마음/데이비드 J 린든 지음·김한영 옮김/272쪽·1만7000원·시스테마

“뇌가 최적의 상태로 진화했다고? 웃기지 마시라. 뇌는 되는 대로 진화했을 뿐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에서 뇌과학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이자 뇌신경과학자인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뇌는 슈퍼컴퓨터보다 효율적인 1.36kg의 조직이 아니라 진화적으로 여러 덩어리가 모여 엉성하게 이뤄진 비효율적인 덩어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최적에 못 미치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오히려 인간이 사랑, 기억, 꿈은 물론이고 심지어 종교적 성향까지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의 기능에 대한 서술뿐만 아니라 뇌의 주요한 기능들을 세포와 분자 수준까지 나아가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뇌는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았다. 기존의 것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로운 뇌가 덧붙여졌다. 한 주걱씩 덕지덕지 더해진 아이스크림콘처럼 말이다. 인간의 중뇌에 있는 시각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뇌의 시각 영역이 손상돼 시각 인지 능력을 잃은 환자 앞에 만년필만 한 작은 손전등을 두고 잡아보라고 하면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잡으라는 것이냐”고 한다. 그러면서도 99% 이상의 확률로 잡아내는 사람이 있는 것은 중뇌의 시각계 때문이다. 개구리나 도마뱀은 이 영역이 주된 감각중추다. 우리 뇌는 손바닥만 한 ‘아이팟’에 소니의 구식 ‘워크맨’이 붙어 있는 꼴이라는 것이다.

슈퍼컴퓨터의 비교 대상으로 종종 등장하는 뇌의 기초처리장치 뉴런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신뢰하기 힘든’ 전달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에서는 전기자극(스파이크)이 주어져도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지 않는다. 이 과정은 순전히 확률의 문제로 평균적인 시냅스에서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할 확률은 약 30%다. 어떤 시냅스는 10%가 안 되고 어떤 것은 100% 방출한다.

이런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컴퓨터로는 어림도 없는 고도의 정신 기능이 가능한 것은 뇌에는 1000억 개의 뉴런과 500조 개의 시냅스가 있기 때문이다. 뇌는 서로 연결된 엄청난 수의 처리기로 인해 인상적인 기능을 하는 일종의 ‘클루지(Kludge·비효율적이고 엉성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작동하는 장치)’다.

최적화되지 않은 뇌가 연산처리를 하려다 보니 대단히 많은 배선이 필요하게 됐고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큰 머리를 갖게 됐다. 그런데 출산 때 태아가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미성숙한 뇌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인간은 부모의 양육이 필요한 유년기가 길어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은 또 500조 개나 되는 시냅스의 배선도를 유전체 안에 전부 저장해 후대에 전달할 수가 없어 태어난 후의 경험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새로운 정보는 과거의 경험들과 결합해 ‘기억’이 되는데, 이 통합과정은 잠자는 시간에 가장 잘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이하고 비논리적인 이야기가 ‘꿈’이다.

간간이 재미있는 비유나 농담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책을 다 읽으려면 글루타민산나트륨, 가바, 글리신, 아세틸콜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이름이나 나트륨·칼륨 이온의 작용 같은 전문 용어도 소화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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