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뒤척거리다 툭 떨어지고 마는… 흔들리는 꽃잎처럼 겹겹이 쌓인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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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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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차례/김명인 지음/121쪽·7000원·문학과지성사

“어떤 벌레가 어머니의 회로를 갉아먹는지/깜박깜박 기억이 헛발 디딜 때가 잦다…문득 얕은 꿈에서 깨어난 내 잠/더는 깊어지지 않겠다/이리저리 뒤척거릴수록 의식만 또렷해져/나밖에 없는 방안에서 무언가 ‘툭’ 떨어지고/누군가 건넌방 문을 여닫는다, 환청인가?/그러고 보면 나도 어느새 후생과 사귈 나이”(‘대추나무와 사귀다’ 중에서)

‘파문’ 이후 4년 만에 출간한 김명인 시인(63)의 신작 시집. 시인은 현재 속에 잠재돼 있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 속에 응축돼 있는 또 다른 생의 겹을 펼쳐 보인다. 시집 제목인 ‘꽃차례’는 꽃이 대궁 위에 붙기까지의 순서를 뜻한다. 씨앗에서부터 꽃잎을 달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꽃차례라는 단어가 포괄하고 있듯 시인은 시 한 편 한 편에서 무수한 시간, 광활한 공간을 끌어안는다.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그걸 거두려고 이튿날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 거야/그럴 테지, 사방을 빼곡히 채운 이 어둠을 좀 봐/망연해서 도무지 실마릴 몰라”(‘천지간’ 중에서)

병들고 쇠약해진 노모를 보며 회한에 젖는 ‘빈집’ ‘등’ 등의 시도 여러 편 수록됐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는 시인이 “‘나’와 ‘그’의 분별이 지워진 독법, 현재적 삶의 시간 속에서 후생의 시간과 아득한 과거의 시간을 동시에 읽어내는 현묘한 독법에 닿았다”고 말한다. 시인은 뒤표지에 “마당가 벽오동 아래 평상을 펴고 설핏 낮잠 들었는데, 꿈길 따라 나선 잠깐이 일생이 되었다”고 썼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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