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감독… 더 독한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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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6일 03시 00분


SK,주전들 줄부상속 헌신과 열정으로 값진 준우승

“배가 고프네.”

정말 배가 고팠던 것일까. 아니면 우승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말한 것일까. 7차전 패배가 확정된 뒤 SK 김성근 감독(67·사진)은 3루 측 더그아웃에 홀로 남아 KIA 선수단의 우승 세리머니를 담담하게 지켜봤다. 그는 “오늘 밤은 함께 고생한 선수들, 코치들과 술을 마시며 보낼 것”이라고 했다.

‘야신(野神)’ 김 감독은 무서운 사령탑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올해 그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김성근의 아이들(김 감독은 선수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른다)’이었다.

상위권 탈락 위기에서 정규 시즌 막판 19연승,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2연패 뒤 3연승, KIA와의 한국시리즈 초반 2연패 뒤 최종 7차전에 이르기까지. 야구에 대한 열정하면 김 감독을 따라올 사람이 없지만 SK 선수들이 보여준 팀에 대한 헌신과 승리에 대한 집념은 이에 못잖았다.

시즌 중반 에이스 김광현과 주전 포수 박경완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남은 선수들은 오히려 똘똘 뭉쳐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포스트시즌에서도 SK 선수들은 져도 진 것 같지 않았고 경기가 거듭돼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팬들은 “SK 선수들은 야구하는 기계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시즌 후 수술대에 오를 예정이었던 채병용은 아픈 팔로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과 KIA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호투해 팀을 위기에서 구했다.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던 그였기에 최종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난 뒤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중간계투 이승호는 포스트시즌 12경기 중 10경기에 등판했고, 포수 정상호는 공수 모두에서 박경완의 공백을 말끔히 메웠다. SK 선수들은 너나없이 “이런 팀에서 야구를 하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동료애라기보다 전우애에 가까운 이 같은 분위기 속에 SK는 우승만큼 값진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은 “우리 아이들이 수많은 시련을 악착같이 이겨내면서 팬들에게 야구와 인생에 대해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는 제자에게 졌으니 내년에는 제자를 추월하는 스승이 되겠다”고 했다. 휴식은 짧다. SK는 28일부터 마무리 훈련을 시작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동아일보 김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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