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3년 여배우 비비언 리 출생

  • 입력 2008년 11월 5일 03시 01분


“로렌스 올리비에가 없는 긴 생을 사느니 그와 함께하는 짧은 생을 택하겠어요. 그가 없으면 사랑도 없으니까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원한 스칼렛 오하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비비언 리.

1913년 11월 5일 인도의 다르질링에서 프랑스계 영국인 아버지 어니스트 리처드 하틀리와 아일랜드계 영국인 어머니 거트루드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비비언 메리 하틀리(Vivian Mary Hartley)다.

비비언은 18세 때 한 모임에서 31세의 변호사 허버트 리 홀먼을 만나 첫사랑에 빠져 결혼했고 20세 때 딸 수전을 낳는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성공을 갈망한 비비언의 우상은 귀족스러운 품격의 성공한 영국인 미남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였다.

‘어린 유부녀’ 비비언은 올리비에를 유혹하기 위해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계획한다.

비비언은 올리비에가 아내이자 여배우인 질 에즈먼드와 함께 런던 사보이 그릴에서 저녁식사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그곳을 찾아간다. 올리비에는 비비언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처음에는 ‘불륜’이었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늘날에는 ‘세기의 로맨스’로 불린다.

올리비에를 따라 미국 할리우드로 간 비비언은 자신의 인생을 180도 전환하게 하는 중요한 곳을 방문하게 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촬영지인 애틀랜타였다.

아직 영화의 여주인공인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배우를 캐스팅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하고 있던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은 비비언을 ‘적임자’로 낙점한다. 비비언은 이 작품으로 첫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첫 번째 결혼을 법적으로 정리하고 합법적인 부부가 됐지만 20년간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허약했던 비비언은 촬영 강행군과 무리한 군인 위문공연으로 폐결핵에 걸렸고 설상가상으로 올리비에의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비비언은 올리비에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회복하지만 줄담배와 무리한 촬영으로 폐결핵이 재발한다.

하지만 ‘강인한 스칼렛 오하라’ 비비언은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두 번째 오스카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비비언의 병치레와 조울증에 지친 올리비에는 당시 46세였던 비비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30세 연하인 조앤 플로라이트와 결혼한다. 올리비에를 잃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은 비비언은 1967년 결국 폐결핵으로 숨을 거둔다.

사망 당시 비비언은 올리비에의 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순간에….

안영식 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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