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8년 드골대통령, 신임 투표 제안

  • 입력 2008년 5월 24일 03시 01분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설득하기로 했다.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수도 한복판의 광장을 3주째 점거했을 때다.

그는 전쟁의 영웅이자 국부(國父) 같은 존재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과 싸우다 세 번 부상을 입었다. 2년 8개월 동안 포로로 지내면서 5차례나 탈출을 시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런던으로 망명해 대독(對獨) 항쟁을 계속했고 1944년 파리를 해방시키면서 임시정부 수반이 됐다.

정계를 은퇴했다가 1958년 식민지인 알제리 문제로 정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자 총리에 복귀한 뒤 이듬해 1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강력한 유럽, 강력한 프랑스를 원했다. 핵무기 개발, 중공 승인, 유럽경제공동체 추진, 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는 독자적인 외교 노선의 결과였다.

5공화정은 의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가원수의 권한을 강화한 체제였다.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반발이 시작됐다.

대학생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다. 교육제도가 지나치게 부르주아적이고 정부가 경찰국가 같다고 주장했다. 1968년 5월이었다.

노동자 800만 명은 낮은 임금과 차별적 대우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프랑스 노동자의 3분의 1이나 되는 규모였다.

버스와 항공기가 멈추고 전기와 우편 서비스가 끊겼다. 학생 교사 노동자가 파리 시내를 휩쓸었다.

대통령의 최후통첩은 5월 24일 나왔다. 연말 국민투표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TV 연설 직후 파리 리옹 낭트 보르도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위가 계속됐다.

노동자 5만 명은 파리 시내를 행진했다. 증권거래소 근처에서 화염병이 등장했다. 시위대는 “증권거래소는 노동자의 것이다. 점거하자”고 외치며 문을 부쉈다.

리옹에서는 시위대 트럭에 받힌 경찰관이 숨졌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 병력이 비상 대기했다.

정부는 재계 및 노동계와 대화에 나섰다. 임금 인상안을 노동자들이 거부했고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은 투표를 6월 말로 앞당겼다. 프랑스 국민은 과격한 시위에 등을 돌렸고 지도자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고비를 넘겼지만 ‘5월 위기’의 여파는 결국 영웅의 퇴장으로 이어졌다. 상원과 지방개혁에 대한 이듬해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많이 나오자 드골은 4월 28일 엘리제궁을 나섰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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