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09년 키스, 美여성 처음 특허

  • 입력 2008년 5월 5일 02시 59분


미국 코네티컷 출신의 한 여인이 두툼한 서류를 품에 안고 특허청의 문을 두드렸다. 나이는 지긋했으나 두 눈은 호기심으로 빛났고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리고 1809년 5월 5일 57세의 메리 키스는 밀짚과 실크를 엮는 기술로 미국 특허를 받아냈다. 여성으로선 최초였다.

1790년 특허법 발효로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 특허를 내 발명품을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해 준 이후, 약 20년 만이었다. 당시 남편과 별도로 여성이 단독으로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합법화되지 않은 주가 많았던 탓이 크다.

사실 키스가 밀짚모자 만드는 법을 개선한 첫 번째 여성은 아니었다. 1798년 뉴잉글랜드의 벳시 멧캐프가 밀짚 꼬는 법을 창안했다. 그 방식은 큰 인기를 끌었고 멧캐프는 여성들을 많이 고용해 모자를 만들었지만 특허를 내지 않았다. 의회에서 자신의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다.

키스는 멧캐프와 달랐다. 이 대범한 여인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었다. 유럽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킨 나폴레옹은 무역을 봉쇄해 적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했다. 미국은 갈등 상황에 말려들기를 원치 않았다. 결국 미국 의회는 금수령을 통과시켜 모든 외국 교역을 금지했다.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 수입이 중단된 유럽 상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국내 생산 활성화를 독려하던 참이었다.

키스의 특허기술은 모자산업을 부흥시켰는데, 1810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만들어진 여성용 밀짚모자가 총 50만 달러어치(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70만 달러·약 47억5200만 원)로 추산됐다. 그는 미국의 새로운 정책에 훌륭한 역할모델이 됐다. 퍼스트레이디 돌리 매디슨 여사가 키스에게 모자를 들어 경의를 표하라고 할 정도로.

그러나 특허는 그에게 부를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모자 유행이 급격히 변하면서 특허 기술이 점차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인생은 내리막길로 치달아 말년에는 빈털터리로 힘겹게 끼니를 이었다. 1836년 특허청 화재로 키스의 특허 파일 원본도 모두 소실됐다. 이듬해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가난한 여인의 무덤은 사후 100년도 넘게 이름 없이 방치되다가 1965년이 돼서야 코네티컷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비석이 세워졌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수많은 여성이 특허를 출원하고, 특허를 받는다. 여성 발명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2008 세계여성발명대회’가 8∼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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