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경제]시간이 희귀한 자원이라는데…

  • 입력 2008년 4월 30일 03시 00분


사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심 씨는 취업 대신 창업을 택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해 일을 대행하는 회사를 차린 것이다.

사업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친구가 많았지만 심 씨는 대학에서 배웠던 기회비용, 한국 사람들의 소득증가 속도 등을 면밀히 분석한 후 사업 전망이 좋다는 확신을 가졌다.

첫 고객은 휴대전화가 고장 난 시장 상인이었다. “고장 난 휴대전화를 서비스센터에 맡겼다 찾는 일을 대신 해 주세요. 낮에 가게를 비울 수 없어 휴대전화를 고치러 가기 어렵거든요.” 심 씨는 서비스센터에서 휴대전화를 수리해 상인에게 가져다 주고 2만 원을 받았다.

“내가 직접 서비스센터에 가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 그 시간만큼 매출손실을 감안하면 이건 아주 싼 거야. 왜 진작 이런 서비스를 대행하는 회사가 없었을까.” 상인은 의아해했다.

다음 날 오후에는 가정주부가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에 예정에 없이 손님들이 오는데 장 좀 봐 주세요. 갑자기 손님이 와서 집 안 청소를 하느라 장 보러 갈 시간이 없거든요.”

심 씨가 청구한 서비스 요금은 1만5000원이었다. 직접 슈퍼마켓에 갔다오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1만5000원은 부담할 만했다.

심 씨 회사에 대한 소문이 나자 대행 서비스를 부탁하는 전화가 불티나게 걸려왔다. 전날 회식자리에 놓고 온 지갑을 찾아서 가져다주기, 집 앞에서 택배물건 받아주기, 법원에 서류 제출하기, 표 구매해 주기 등 서비스도 다양해졌다.

주변 사람들은 심 씨의 판단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역시 경제학을 전공한 친구라 달라도 뭔가 달라.”

“유망 산업이 되겠는걸. 나도 창업을 고려해볼까.”

심 씨 역시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을 절약하려는 수요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창업 초기에는 상당히 고생할 각오를 했는데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심 씨는 직원을 충원하기로 하고 ‘시간을 벌어주는 사업에 동참하실 분 모집’이라는 문구의 광고를 냈다.

이해

‘시간이 돈’이라는 말이 있다. 시간은 희소하므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교훈이다.

과거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시기에 살던 사람들은 오늘날만큼 시간을 희소하게 여기지 않았다. 시간을 단축한다고 해서 가을에 수확할 벼를 여름에 수확할 도리가 없거니와 절약한 시간을 다른 곳에 쓸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시간이 점점 희소한 자원으로 변화했고 시간의 기회비용이 커졌다. 한 시간을 절약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아졌다는 뜻이다. 시간을 절약할 동기가 충분해진 것이다. 기업은 시(時)테크를 넘어서 분(分)테크와 초(秒)테크 개념까지 도입하고 있다.

이언 워커라는 영국 경제학자는 시간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의 공식에 따르면 평균적인 영국 사람은 한 시간의 가치를 약 1만1000원으로 평가한다. 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그 대가로 1만1000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 사람들의 시간 가치도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가치는 소득에 비례하므로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시간의 가치는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 크다. 따라서 경제 성장으로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시간을 절약해 주는 물건이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소비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단순히 가격만 보는 게 아니라 소비할 때 들어가는 시간까지 고려한다.

한국에서 KTX가 개통한 지 3년 만에 승객 1억 명을 돌파했다. 처음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한국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빠른 교통수단을 많이 찾고 있다는 증거다.

시간이 귀한 사람들은 요금이 4만 원인 기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5시간 걸려서 가는 것보다는 요금이 5만 원이지만 3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KTX가 더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KTX를 타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을 늘릴 수는 없지만 시간을 돈으로 거래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다.

한 진 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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