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날 살아있게 해준 당신, 사랑한다

입력 2006-10-13 03:00수정 2009-10-07 14:45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9·11테러 당시 건물 잔해 속에 갇혔다가 구조된 두 경찰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휴먼 스토리다. 사진 제공 영화사 숲
“여보 사랑해.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그런데…나는 아마도 살 수 없을 것 같아. 아이들을 잘 부탁해….”(9·11테러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근무하던 스튜어트 멜처 씨가 부인에게 남긴 전화)

“엄마! 이 건물이 불에 휩싸였어. 벽으로 막 연기가 들어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엄마, 사랑해. 안녕….”(같은 날 베로니크 바워 씨가 어머니에게 한 전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상징이었던 쌍둥이 빌딩, 월드 트레이드 센터(WTC)가 두 대의 비행기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이 영화 같은 사건을 접한 세계인들을 눈물짓게 만든 것은 그 속에서 희생당한 보통 사람들이었다. 죽음의 공포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 순간, 그들은 가족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현장에 뛰어든 구조대원들이 있었다.

5년 뒤, ‘플래툰’ ‘JFK’ 등으로 굵직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해 온 거장 올리버 스톤이 선택한 것도 정치가 아니라 가족애와 휴머니티다. 12일 개봉한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그날’을 겪은 보통 사람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뉴욕 항만 경찰청 경사 존 맥라글린(니컬러스 케이지)은 언제나처럼 뉴욕 중심가 순찰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비행기 그림자와 함께 ‘꽝’ 하는 굉음이 울리고, 당장 WTC로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존을 포함해 4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건물은 무너져 내리고 존과 윌 히메노(마이클 페냐) 둘만이 건물의 잔해 더미에 깔린 채 겨우 살아남는다. 사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절규하고, 존과 윌은 죽음의 길목에서 힘겹게 버텨 나간다.

9·11테러를 소재로 했다고 하면 대부분 재난영화의 거대한 스펙터클을 예상할 것이다. 그런 기대로 보면 다소 심심하고 지루할 것이다.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극적인 스펙터클은 없다. 영화는 큰 긴장감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둠 속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니컬러스 케이지와 마이클 페냐의 흙투성이 얼굴 클로즈업. 최대한 사건 현장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 관객들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떠올릴 만하다. 시시각각 상황을 알리는 전 세계의 뉴스를 삽입해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진다.

WTC는 기독교와 가족주의 애국주의 등 미국적인 가치의 소중함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죽음이 가까워 오자 주인공들은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수님의 환상을 보기도 한다. 결국 살아남아 부인을 만난 순간 니컬러스 케이지가 하는 말은 “당신이 날 살아있게 해줬어(You kept me alive)”다. 한 해병은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가야 하는 게 신이 주신 소명”이라며 현장에 뛰어든다. 정말 ‘미국 영화’다.

보통 사람들의 용기와 사랑은 억지스럽지 않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9·11은 인간의 양면을 보여줬다. 무서운 악마성과 그 반대에 감춰져 있는 선함을”이라는 대사는 미국이 선(善)이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져 역으로 이라크전 희생자들도 떠올리게 만든다. 12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