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12>최고기술책임자(CTO)

입력 2006-02-27 03:00수정 2009-10-0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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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에 대해 ‘공돌이’ 출신이 뭘 알아?”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그런대로 먹혔다. 기술 연구에 집중하는 이공계 출신의 특성상 조직·자금 관리나 마케팅을 잘 이해하지 못해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하기 어려운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공계 출신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최고기술책임자(CTO·Chief Technology Officer)라는 이름으로 기업 경영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기업 간 전쟁에서 기술이 가장 중요한 ‘무기’로 떠오르자 개발자들이 직접 ‘전장(戰場) 지휘’까지 맡게 된 것이다.

이미 대기업의 전자 화학 통신 계열사와 중소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진은 상당수 CTO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제 ‘공돌이쯤은 돼야 경영을 좀 아는 세상’이 온 것이다. 바야흐로 CTO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 기술을 알아야 경영도 한다

현재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진에는 신기술 개발로 회사를 업그레이드한 주역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삼성전자에는 윤종용(尹鍾龍) 이윤우(李潤雨) 부회장, 이기태(李基泰) 권오현(權五鉉) 이상완(李相浣) 황창규(黃昌圭) 김재욱(金在旭) 사장 등 이공계 출신 사장급 이상이 7명이나 된다.

LG전자에서도 김쌍수(金雙秀) 부회장을 비롯해 김종은(金鍾殷) 이희국(李熙國·54) 우남균(禹南均) 박문화(朴文和) 이영하(李榮夏) 사장 등 6명이 기술 개발 현장을 지휘하다 경영진이 됐다.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主役) 중 한 명인 임형규(林亨圭·53) 삼성종합기술원장은 삼성그룹의 기술 개발을 총괄하는 CTO. 그의 손에서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의 성장 기반이 마련됐고,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차세대 시스템 칩도 만들어졌다. 그는 기술인력의 득세(得勢)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은 남보다 앞선 첨단 기술로 승부해야 지속적인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성장 엔진을 찾고 있는 기업들이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전문 기술인력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는 CTO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기술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는 눈’과 ‘기술 집단을 육성할 수 있는 능력’ 두 가지를 꼽았다.

LG전자의 디지털 컨버전스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희국 사장도 LG그룹의 핵심 기술인력으로 꼽힌다. 그는 CTO를 기업의 기술 개발 능력을 좌우하는 ‘컨트롤 타워’로 규정했다. 이 사장은 “제품 개발, 특허, 기술 도입, 기술 수출, 연구개발(R&D)을 무한 책임지는 것이 바로 CTO”라며 “글로벌 경쟁에서 기술을 모르는 경영진은 적들과의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 정보기술(IT) 업계 CTO 약진 두드러져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의 네트워크 부문장을 맡고 있는 송진규(宋珍圭·53) 부사장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주역이다. 또 집요하게 시스템을 개선하고 필드 최적화 기술을 업그레이드해 통화 품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CTO의 경쟁력이 디지털 컨버전스를 강조하는 시대 흐름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컨버전스란 IT 기반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융합돼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재탄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신기술 수요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면서 CTO가 중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송 부사장은 또 “IT 업계에 블루오션(blue ocean·미개척 고수익 시장)이 있다면 그것을 발굴하는 것은 단연 CTO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KT의 R&D부문장인 윤종록(尹宗錄·47) 부사장도 통신 업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테크노 리더’로 꼽힌다. SK텔레콤 송 부사장의 대학 후배이기도 한 그는 KT에서 기술본부장, 신사업기획본부장, 성장전략부문장 등을 맡으며 미래 사업의 연구개발을 총지휘해 왔다.

윤 부사장은 “새로운 성장 엔진의 ‘원료’인 창의력은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는 발현될 수 없다”며 “창의력을 기반으로 기존 사업의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T벤처 업계에서는 여성 CTO의 약진도 눈에 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출신인 한미숙(韓美淑·43) 헤리트 대표는 각광받는 여성 CTO 중 한 명. 그가 2000년에 설립한 헤리트는 통신, 방송, 인터넷을 융합한 ‘컨버전스 통신 플랫폼’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2004년 중소기업기술혁신대전에서 대통령상도 받았다.

한 대표는 “원가 절감과 서비스 차별화만으로는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며 “창의적 기술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CTO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로 휴대전화용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연간 1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컴투스의 박지영(朴智暎·31) 사장도 촉망받는 여성 테크노 리더로 꼽힌다. 한국모바일게임산업협회장과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03년 미국 타임지(誌)가 선정한 세계 14대 ‘기술 거물(Global Tech-Guru)’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 사장은 평소 “기획력 있는 기술 인재를 발굴해서 키우는 것이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연구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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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정훈(연세대 신문방송학과 3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기업 CEO 대학 전공 분야
계열상장사코스닥
이공계열263명419명
상경계열405명328명
법정계열55명67명
인문계열102명69명
기타34명173명
합계859명1056명
상장사: 2005년 6월 말 기준. 코스닥: 2006년 2월 26일 기준.
자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

▼기업 ‘테크노 CEO’10여년새 60배로▼

CTO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크게 늘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10여 명에 불과했던 기술 분야 전문가 출신 CEO가 최근에는 600명을 넘어섰다.

26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상장사 CEO 859명 중 이공계 학과 출신은 263명으로 전체의 30.6%에 이르렀다. 2002년 186명에 비해 41.4%나 늘어난 수치.

상장사에는 ‘전통의 강자’인 상경계열 학과 출신이 405명(47.1%)으로 아직까지 가장 많았다.

특히 이공계 학과 출신 263명 중에는 순수 기술·엔지니어 출신 CEO도 92명이나 됐다. 2002년 76명에 비해 21% 늘어난 것이다.

‘왕년에 잘나갔다’는 기획 출신(53명)보다도 기술 개발 분야 출신이 훨씬 잘나가는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재무 출신(93명)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세를 형성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체가 많은 코스닥 상장 법인에서는 이공계 출신 파워가 훨씬 더 강력하다.

코스닥상장법인협의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법인의 CEO 1056명 중 419명(39.7%)이 이공계 학과 출신이다. 상경계열 출신 328명(31.1%)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법정계열, 인문사회계열은 2∼7%에 머물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이공계 출신 연구개발(R&D) 인력이 시장에 큰 반향을 몰고 오는 신기술을 개발할 경우 전사적인 관심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통상 뛰어난 기술 인재는 관리직이나 영업직에 비해 승진도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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