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글로벌 코리아]외국서 배운다<下>싱가포르

  • 입력 2004년 7월 21일 19시 46분


코멘트
《싱가포르의 관문 창이 국제공항의 입국 수속장 모습은 특이하다.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외국인의 줄이 내국인의 줄보다 훨씬 길다. ‘싱가포르 거주자 5명 가운데 1명이 외국인’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자 운전사가 중국어로 목적지를 물었다. 영어로 대답하자 기사는 유창한 영어로 응대했다. 택시요금을 신용카드로 냈더니 영수증까지 잊지 않고 챙겨 줬다. 싱가포르 어디서나 비자, 마스터, 다이너스티 등 국제적인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다.》

○경쟁력 있는 외국인 및 기업은 환영

싱가포르는 다국적기업의 천국이다. 약 7000개의 다국적 기업이 싱가포르에 있고 다국적기업 아시아본부도 대개 이곳에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86년부터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에 대해서는 20%의 법인세율 대신 5년간 15%의 우대세율을 적용하는 인센티브제를 시행하고 있다.

외국의 우수 인력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외국인이 연구원이나 교수 등으로 싱가포르에서 3∼6년 살면 영구 거주가 가능한 녹색비자(그린카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덕 연구단지와 비슷한 ‘싱가포르 사이언스 파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캐나다인 알렉산드라 포포브(42)는 “연구소 가까이에 집을 마련해 주고 근무 여건도 좋아 싱가포르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거주비자를 얻거나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이 요구된다. 외국인에게 처음 거주비자를 발급할 때는 홍콩에 비해 까다로운 편. 하지만 일단 비자가 발급된 외국인, 특히 전문지식을 가진 외국인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대접해 준다.

20년 동안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해 온 한인회장 김기봉(金琪鳳)씨는 “싱가포르는 자기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외국인들을 끌어 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족들이 살기 좋은 곳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싱가포르에 온 주부 이원정씨(36)는 “싱가포르는 영국 등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가장이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문화가 일반적”이라며 “한국과 달리 남자들이 밤늦도록 술을 먹는 문화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워낙 치안이 잘돼 있어 외국에 나와 있어도 별로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미국에서 7년 동안 살다가 싱가포르에 오게 된 백중훈군(13)도 “미국에서는 오후 8시만 돼도 마음대로 밖에도 못 나가고 위험했는데 여기에서는 저녁 늦게 친구들이랑 농구하다 들어와도 부모님이 안심하신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싱가포르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보안(security). KOTRA 이채경(李采慶) 싱가포르무역관장은 “이곳에서는 정부가 각 기업에 예비군 훈련 비용을 지불하고 있어 놀랐다”며 “작은 도시국가지만 정부가 그만큼 국가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외국인의 일상생활

싱가포르 내의 모든 표지판은 영어와 중국어 두 가지로 안내돼 있다. 버스, 우리나라의 지하철에 해당하는 MRT, 택시 등 모든 교통수단의 안내도와 안내방송도 영어가 기본. 신용카드를 이용해 현금을 출납할 수 있는 ATM 기계도 영어로 돼 있고 웬만한 국제 신용카드는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은 30개가 넘는 국제학교에서 해결이 가능하다. 한국인학교도 1993년에 설립돼 중학교 과정까지 가르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학교 설립을 위해 부지를 30년, 60년, 99년, 999년 단위로 저렴한 가격에 임대한다. 교육비는 넓은 부지에 수영장, 강당, 테니스장, 암벽등반장 등 최고 수준을 갖춘 국제학교일 경우 연간 1만5000달러로 비싼 편.

싱가포르 한국학교 장용희(張龍熙) 교장은 “싱가포르 교육부 고객 서비스 센터에서 입학 방법, 수업료, 외국인 학생 비자 취득 요령 등을 자세하고 친절히 설명해 준다”며 “싱가포르에 워낙 외국인 학교가 많아 각자 원하는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고, 한인학교에서도 영어 과정 이외에 별도로 한국어 수업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병원을 이용할 때 불편이 없도록 긴급전화인 2개의 영어 메디컬 핫라인과 주요 병원별로 외국인 진료소도 운영하고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메디컬 핫라인은 전화만 걸면 바로 응급차가 출동하도록 되어 있는 제도. 영주권자와 고용비자를 받은 외국인에게는 내국인과 동일한 의료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는 ‘음식 백화점’이라고 불릴 만큼 외국인들의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음식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 시내 곳곳에 일본 타이 이탈리아 멕시코 등 여러 국가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항시 먹을 수 있는 노천 식당과 카페가 널려 있어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외국인들이 향수를 달래기에도 충분하다.


싱가포르=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외국인 주택 임대료 정부가 15% 깎아줘▼

싱가포르 오차드 거리 가까운 곳에 있는 스프링 그루브. 월 임대료 4000달러 정도인 이 콘도미니엄 거주자의 70%는 외국인이다.싱가포르=신수정기자

홍콩의 외국인 주거단지 형성 과정이 자생적이라면 싱가포르는 ‘당국의 정책 의지’가 개입돼 있다는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외국인의 주거 편의를 위해 1997년부터 주택개발청 산하 주택건설 및 임대업체인 ‘JTC’에서 외국인에게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시가의 85% 수준에 임대해 주고 있다. 영주권자들은 싱가포르 자국인과 동등하게 정부가 임대하는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다.

영주권자들에게만 임대하는 아파트도 싱가포르에 2년 이상 거주했으며 기술을 보유한 저소득층의 외국인들에게는 2년간 낮은 가격으로 빌려 주기도 한다.

직장 때문에 몇 년간 싱가포르에 머무르는 외국인들은 주로 20∼30층으로 이뤄진 주거 전용 콘도에 산다. 한국의 주상복합건물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상가는 없다.

주거면적 30∼50평에 방 3, 4개가 딸려 있는 콘도의 월세는 2000∼4000달러. 시내 중심지와 가까운 오차드 거리, 리버밸리 등지에 많이 있다. 최근에는 창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최신식 콘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들 콘도는 대부분 수영장, 헬스장, 테니스장 등을 갖추고 있고 인근에는 수준 높은 외국인 국제학교, 병원, 극장, 쇼핑센터 등이 있어 생활이 편리하다.

경비원이 항상 콘도 입구를 지키는 등 자체 경비도 잘 이뤄져 있고 나무가 울창한 정원과 분수대 등 외관도 아름다워 환경을 중시하는 서구권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싱가포르 국제기구에 파견돼 콘도에서 사는 농협 직원 김성철씨(42)는 “아이들 학교가 집에서 가깝고 각종 편의시설이 주변에 있어 살기 좋다”면서 “시 외곽으로 나가면 넓은 베란다와 정원을 갖춘 최신식 콘도들이 즐비하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테런트씨 인터뷰▼

서울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살아 본 외국인을 만났다.

두 도시의 ‘글로벌화 수준’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싱가포르는 규제가 많다. 하지만 외국인이 가족과 함께 살기엔 환상적인 나라다.”

서울에서 2년 남짓 근무했던 로이터통신 아시아총국 부편집장 윌리엄 테런트(53·사진)는 말레이시아인 부인 및 6, 8세짜리 두 딸과 함께 싱가포르에 살고 있다.

그는 “세계적 수준의 국제학교가 있고 공원과 문화 공간이 많은 싱가포르 생활에 만족한다”면서 “서울이 싱가포르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의사소통과 은행 이용 등이 크게 불편했는데 싱가포르에선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겠다.”

그는 이어 서울에서는 주말에 외국인이 문화생활이나 각종 스포츠를 즐길 만한 곳이 많지 않았던 점이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곳은 골프를 저렴하게 칠 수 있는 말레이시아도 가깝고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의 휴양지에도 손쉽게 갈 수 있어 주말이 다채롭다”고 전했다.

인구 400만명인 작은 섬 곳곳에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고 정원이 딸린 집도 서울보다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싱가포르의 장점.

테런트씨는 “싱가포르 정부는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이고 정직하게 일한다”며 “때때로 개인 생활을 너무 통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곳 생활은 아주 편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날씨만큼은 4계절이 뚜렷한 서울이 훨씬 좋았다”며 “한국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외국인의 신용카드 제한을 없애고 은행 시스템을 글로벌화하면 외국인이 살기에 훨씬 더 편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