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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續세상스크린]배우에게 옷은 ‘군인의 총알’

입력 2004-06-08 18:07업데이트 2009-10-0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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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 영화제나 칸 영화제의 남자 의상은 100% 나비넥타이에 턱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언젠가부터 나비넥타이가 아닌 일반 넥타이를 매고 나오는 배우의 모습도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특히 3월 아카데미 시상식 때 톰 크루즈가 녹색 계열의 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고 나온 모습은 지금까지도 근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행이 턱시도에서 일반 정장으로 조금 변하곤 있지만 어쨌든 영화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의 하나는 옷이지요.

배우는 자기표현을 위해 옷을 입기도 하지만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도 옷을 입습니다. 그것은 팬에 대한 예의이자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흔히 배우에게 옷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총알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합니다. 실제 영화에서 의상은 배우의 연기 못지않게 극중 인물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어떤 경우는 의상이 연기를 단순히 도와주는 정도가 아니라 연기를 해주기도 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광고에서 모델이라도 할 때면 의상은 소비자에게 그 제품의 특성과 콘셉트를 나타내는 중요한 도구여서 역시 신중하게 선정됩니다. 영화나 광고에서는 상의할 수 있는 의상팀과 코디네이터가 있고 연기해야 할 인물의 성격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선정기준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배우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소의 옷차림은 자신이 결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다니는 장소와 만나게 되는 사람이 비교적 다양한 편이라 옷을 입는다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집 앞에 나와 잠깐 일을 볼 때도 부스스한 채 나가기는 힘들지요.

어떤 날은 오전에는 영화사에서 작품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지인의 결혼식이 있고, 저녁때는 언론 관계자가 많이 모이는 시사회에 참석한 다음 밤에는 지방으로 촬영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품 회의 때는 모두가 가장 캐주얼한 복장으로 만나게 되고 결혼식 때는 넥타이에 정장을 입습니다. 카메라가 많은 시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캐주얼하게 입기도 그렇고, 정장을 입기도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지방으로 밤 촬영을 떠나게 되면 차 안에서 거의 잠옷에 가까운 편안한 옷을 입어야 체력이 덜 소모됩니다. 그런 날은 차에 옷을 한두 벌 걸어놓고 상황에 따라 바꿔 입곤 합니다.

그냥 옷 한 벌로 하루의 약속들을 모두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어떤 장소에선 어색하고 결례가 될 때도 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벗고 다니는 것만 아니라면 그냥 자신에게 편하고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그만이지 뭘 그리 신경 쓰고 피곤하게 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옷이라는 것은 자기만족인 동시에 중요한 예의가 되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대종상 시상식에 청바지를 입고 나오고, 정장을 입지 않은 채 남의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는 일들이 과연 자기 개성이라는 이유로 이해될 수 있을까요? 옷이라는 것은 자기표현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조화로운 세상을 가꾸어나가는 중요한 ‘바탕색’이 된다고 늘 믿어왔습니다.

moviejh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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