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백형찬/교통질서, 벌칙만으론 안된다

  • 입력 2004년 5월 30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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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결승 경기에서 안톤 오노 선수의 ‘비신사적’ 행동으로 인해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해서 국민적 불만을 산 일이 있다.

그때 남들이 쌓아 놓은 고지를 가로채는 얌체 같은 행위를 지칭하는 뜻으로 ‘오노이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오노이즘은 우리 생활 속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교통문화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자동차 행렬 사이로 잽싸게 끼어드는 행위가 대표적인 오노이즘이다.

경찰은 6월 1일부터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 행위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인다. 교통질서의 기본인 정지선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차분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질서 습관이 잘 안 돼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질서 교육을 받아 왔건만 학년이 높아질수록 질서 의식은 흐려지고 어른이 되면 실종되고 만다.

선진국을 여행하다 보면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흔하다. 끊임없는 자동차 행렬 속에서도 새치기라든지 경적 없이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남의 차례를 순식간에 빼앗아 가는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수년 전, 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양심 냉장고’를 걸고 교통질서 지키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나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교통질서가 상당히 호전됐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나서는 다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교통문화의 현주소다.

교통사고는 질서만 잘 지키면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기 위해 우리는 흔히 두 가지 방법을 쓴다. 하나는 벌칙을 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의식을 차근차근 바꿔가는 것이다. 벌칙을 강화하면 일시적으로는 질서를 지키게 된다. 그러나 곧 만성이 되어 이를 실감하지 못한다. 효력이 장기간 지속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의식 개혁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나 효과는 장기적이다. 우리나라가 교통문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첫째, 자동차보다는 사람을 중시하는 교통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요즘 서울 시내에는 지하도나 육교를 이용하지 않아도 길을 건널 수 있는 곳이 늘어났다. 자동차에 내어주었던 큰길을 사람이 되찾은 것이다. 모든 교통시설과 신호체계도 이렇게 보행자 위주로 바꿔야 한다.

둘째, 질서 교육을 강화하자. 유치원 때부터 질서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체득하도록 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솔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셋째, 대중매체와 사회단체의 지속적인 교통문화 캠페인이 필요하다. 대중매체와 사회단체가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해 무질서가 뿌리 뽑힐 때까지 끈질기게 범사회적인 운동을 벌여야 한다. 미국의 타임지에 “생명을 담보로 스릴을 즐기려면 코리아에 가서 운전하라”는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이 얼마나 창피한 우리의 교통문화 수준인가.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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