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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續세상스크린]자랑스러운 내 친구, 허재

입력 2004-04-27 17:40업데이트 2009-10-0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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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군의 농구선수 허재는 저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고교 3년 동안 제가 다닌 용산고는 거의 모든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농구부 전원의 팀워크와 노력도 큰 몫을 했겠지만 허재의 공이 가히 결정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각종 전국대회 결승전이 있을 때면 오전 수업만 마치고 모두 장충체육관으로 달려가 목이 터져라 응원했고, 허재는 그런 친구들과 선생님께 늘 승리로 보답했습니다.

1학년 소풍 때 기타 치며 놀다가 친하게 된 그 친구가 아직도 고마운 것은 운동화 때문이었어요. 허재는 당시로선 꽤 부유한 아이들만 신을 수 있었던, 선망의 나이키 가죽운동화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비록 자기가 신고 뛰었던 중고 농구화지만 제겐 감동적이었습니다. 발에 맞지 않는, 그 큰 운동화의 끈을 꼭꼭 동여매고 좋아서 잘도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앙대에 진학한 허재는 훌륭한 동료들과 막강 팀워크를 자랑하며 화려한 ‘허재의 시대’를 열어갔습니다. 자기 집 마당에 농구대를 설치해 놓을 정도로 성실한 연습벌레인 그 친구를 안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체육과와 영화과로 전공은 틀렸지만, 같은 대학을 다녔던 우리는 고등학교 때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매년 계속되는 우승은 기쁨을 지나 심지어 당연한 것처럼 돼버릴 정도였으니까요. 농구천재 허재는 중고교와 대학, 실업, 프로팀을 거치며 단 한순간도 스타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니면 코트 밖 세상에서도 항상 중심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그 친구의 씩씩함은 어느새 당당함을 지나 독선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을 포용하는 데 인색했고, 더러 자기성격을 이기지 못해 남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술이라도 한잔 하게 되면 넘치는 에너지를 어쩌지 못해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녀석을 참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수년간 연락 없이 지내다 몇 년 전 다시 만나게 된 허재. 그 친구의 얼굴에서 그토록 온화한 모습을 발견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 친구와 그날 오랫동안 술을 마시며 지난날을 얘기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이제는 남을 배려하며 살고 싶다고 겸허하게 말하는 친구에게 왜 그토록 변했느냐고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30년을 코트에서 최선을 다하느라 ‘세상사는 법’에 거칠었던 나이 마흔살의 이 위대한 농구선수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다그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머리 좋은 이 친구는 벌써 다 알고 있을 테니까요.

5월 2일 원주에서 자신의 은퇴경기가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떠나는 농구대통령 허재….

허재야! 진정한 대통령은 퇴임 후 더 빛나듯 코트를 떠난 뒤 더욱더 빛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네 앞에서는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했다만 네가 참 자랑스럽다. 자식, 그동안 수고했다.

그날 농구장에 가서 꽃다발 한 아름 안겨주려 합니다.

moviejh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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