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인도행 항공기 스튜어드

  • 입력 2004년 3월 18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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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들. 하지만 이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갤리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급히 끼니를 때우는 모습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교육훈련원에서 서비스 연습을 하는 장면. 비행 중에는 기체가 흔들려 사진 촬영이 어려웠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미소가 아름다운 그녀들. 하지만 이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갤리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급히 끼니를 때우는 모습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교육훈련원에서 서비스 연습을 하는 장면. 비행 중에는 기체가 흔들려 사진 촬영이 어려웠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그녀들을 볼 때가 종종 있다. 정갈한 유니폼, 상큼한 미소.

수면 위의 백조처럼 고고한 자태. 송창식의 노래처럼 ‘말 한번 붙여봤으면…’ 싶지만 언감생심.

지금껏 그녀들과 나눈 대화는 비행기 안에서 “주스 드실래요?” “네”, “비프 오어 치킨?” “치킨” 딱 두 마디뿐이다. 한때 사귀었다든가 친인척 중에 종사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비슷한 처지일 텐데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친구들은 모두들 꽤나 아는 체를 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며 본 이들의 모습은 승객으로 볼 때와는 많이 달랐다.

아시아나항공 스튜어드로 체험한 인도행 비행기 뒷이야기.》

○ 백조의 호수

이륙 2시간 전까지 집결.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역시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노선의 특성, 탑승 VIP, 공지 사항 등 간단한 브리핑. 공항 이동. 기장과 함께 비행 전반에 대한 브리핑. 백조의 호수는 딱 여기까지다.

기내에 들어서자마자 서비스를 위해 하이힐을 단화로 바꿔 신는다.

출발 25분 전 탑승 사인이 떨어지기까지 식사, 음료, 비상장구, 기내 판매 물건에 화장실까지 점검한다. 짧은 시간에 끝내야 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유니폼에 안 어울리는 목장갑. 커튼을 쳐 놓은 갤리(식사준비를 하는 곳) 안은 명절날 부엌 같다.

국내 항공법상 객실승무원의 정의는 ‘항공기 내에서 비상 탈출시 신속하고 안전한 탈출을 진행하는 임무와 평상시 기내 안전 업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이다. 우리가 보는 서비스는 회사 차원의 서비스이지 법적으로 정해진 일은 아니다.

○ 갤리 안 풍경

8시간 반 정도 걸리는 인도행 비행기는 모두 9명의 승무원(남 승무원 1명 포함)이 탄다.

노선마다 특성이 있지만 델리 노선은 서비스가 힘들기로 유명하다. 종교적인 이유로 일반 기내식보다 각자 주문한 특별식을 먹는 인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180명 중 67명이 특별식을 주문했다. 모두 일일이 점검해 한 개씩 나눠줘야 한다.

AVML(아시안 베지터블 밀), HVML(힌두 베지터블 밀), MOML(모슬렘 베지터블 밀), SPML(스페셜 밀), 인디언 베지터블 밀 등 종류도 가지가지. 샌드위치도 꼭 구별해 먹는다.

외모가 뛰어난 승무원이 1등석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등급이 높은 좌석일수록 고참들이 맡는다. 1등석은 승객 수는 적지만 VIP나 최고경영자(CEO)가 많기 때문에 평소 식습관이나 기호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델리행 비행기는 비즈니스석이 최고다).

바쁘게 식사를 나르는데 갤리 안 벽에 붙은 신용불량자 명단이 눈에 띈다.

기내에서는 카드의 거래 정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 요주의 명단을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아 대조, 확인한다.

○ 갤리 밖에서는

혹시 몰라 요주의 승객이 있느냐고 물으니 불법 체류로 추방된 아프리카인 한 명이 있단다. 테러나 난동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내가 전담해 마크하기로 했다.

통로를 왔다 갔다 하며 눈여겨보는데 그만 눈이 마주쳤다. ‘이크!’

아프리카 사람이 왜 인도로 가느냐고 묻자 추방자는 그가 한국에 들어올 때와 똑같은 경로로 돌아가게 돼 있다고 했다.

갑자기 한 여승무원이 비닐장갑을 끼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누군가 흘린 ‘큰 것’을 치우기 위해서다. 개발도상국 노선에는 아직도 수세식 변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우아한 ‘백조’가 이런 일까지….

한참 식사 서비스를 하는데 비프가 떨어졌다. 광우병 파동 때문에 적게 준비한 탓이다. 다른 승무원들은 일일이 “닭고기와 비프를 준비했는데 비프가 떨어졌습니다. 닭고기도 괜찮습니까”라고 묻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단 한 마디로 남은 치킨을 다 처리했다. “치킨 오어 낫싱.” 이게 맞는 영어인가?

현지에 도착해서는 기본적으로 자유시간이다. 하지만 마음대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관광을 하거나 아는 사람 집에서 잘 경우 행선지와 연락처를 보고 해야한다.

이들은 현지시간이 아닌 서울시간에 시계를 맞춰 놓는다. 비행코스에 따라 수시로 시간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특정시간을 기준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신체리듬이 깨지기 쉽다.

○ 아름다운 비행

한 집단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전체를 단정하는 경향이 우리에게는 있다. 예를 들면 기자, 군인, 연예인 등등. 개인의 일로 전체가 싸잡아 평가받는 집단이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기내에서 본 모습이랑 너무 달라’, ‘승무원들은 다 그래’ 하는 말들.

그러나 당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그들이 ‘눈만 높은’ 부류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물건 하나 사왔다고 사치스럽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승무원의 반입 한도액은 60달러다.

이들 집단 전체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기자는 아직 완전히 모른다. 다만 잘 모르던 세계를 조금이라도 겪어보면서 그동안의 편견을 조금은 버릴 수 있었다.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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