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쿠웨이트 난민들 “모든 꿈 사라졌다” 넋잃어

  • 입력 2003년 3월 22일 0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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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개전 이후 바그다드에서만 1명이 숨지고 14명이 부상하는 등 민간인들도 전화(戰禍)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3000여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21일 이란으로 넘어왔다고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 밝혔다. 또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요르단 국경을 통해 난민 500여명이 난민캠프로 넘어오는 등 요르단과 쿠웨이트 접경지대에서도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첫 난민=이번 전쟁의 첫 난민이 20일 오전 이라크 접경 요르단의 동부 황무지에 세워진 난민캠프에 도착했다. 바그다드에서 일하던 수단인 270여명이 이날 오전 1시경 수단대사관이 마련해 준 버스 편으로 빠져나온 것.

이들은 요르단의 알카라마 국경검문소를 통과해 60㎞가량 떨어진 ‘제3국인 캠프’에 수용됐다. 19, 20일 이틀간 몰아닥친 모래바람으로 캠프 안도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바그다드에서 재단사로 일해 온 바시르 아담 압둘라(44)는 아이들을 담요로 덮어주었지만 여전히 맨발이 담요 바깥으로 나온 아이들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1989년 바그다드에 도착해 큰돈을 벌 꿈을 꿨었다”며 “두 번의 전쟁으로 모든 게 사라졌다”고 했다.

‘제3국인 캠프’에서 요르단쪽으로 3∼4㎞ 더 들어온 곳에는 ‘이라크인 캠프’가 세워지고 있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의 페터 케슬러는 “최대 6만명의 난민이 올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요르단 정부는 20일 ‘제3국인 캠프’로부터 국경검문소까지를 ‘폐쇄구역’으로 선포해 통행을 제한했다.

▽첫 희생자=미군 공습의 최초 희생자는 요르단 암만과 이라크 바그다드를 오가는 택시운전사 아흐마드 왈리드 알 바스(34)로 밝혀졌다. 그는 미군의 공격을 4∼5시간 앞둔 20일 오전 1시경(현지시간) 요르단 국경에서 바그다드쪽 300㎞ 지점에서 미군 헬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그는 잠시 차를 세우고 운전자 휴게소에 들어가 바그다드의 택시회사로 전화를 걸던 중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그의 택시에 탑승했던 이라크인 아부 모하마드가 바그다드로 들어와 소속 택시회사에 전하면서 알려졌다.

알 바스는 아내와 10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의 제닌에서 태어난 그는 18세 때 부모와 함께 요르단 암만으로 이주했다. 이후 택시운전사로 암만과 바그다드를 오가면서 꽤 많은 돈을 모았는데 전쟁이 임박해 오자 처자를 데리고 암만으로 빠져나왔다.

최근 바그다드에서 암만행 택시요금이 평소의 10배인 1000달러까지 치솟자 운전사들은 목숨을 걸고 영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쿠웨이트=21일 쿠웨이트의 하늘은 익숙한 모래폭풍 대신 낯선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불타는 이라크 남부 유정의 연기가 북풍을 타고 밀려 왔기 때문이다.

쿠웨이트 정부는 계엄령이나 야간통행금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22일부터 29일까지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을 뿐 쿠웨이트 전체가 겉으로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쿠웨이트항공은 계속 운항 중이며 인근에 이라크의 미사일이 떨어진 알슈아이바 정유공장도 정상조업 중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미사일 반격이 시작되자 쿠웨이트인들은 물과 빵 사재기에 나서 생필품이 정상가격보다 4배 이상 비싸게 암거래되고 있다. 이곳 통화인 디나르를 달러로 바꾸려는 사람들로 환전소는 붐볐다.

정부는 생화학 무기보다도 사회적 불안이 더 무섭다고 보고 빵과 물 생산량을 두 배 이상 늘릴 것을 요구했으며 국립은행도 달러를 무제한 방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방독면을 구하지 못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몇 달 전 국민과 외국인을 불문하고 200만개의 방독면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25만개밖에 구하지 못해 군인과 경찰, 공무원, 석유공사직원에게만 나눠졌다.

euntack@donga.com

루웨이시드(요르단)=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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