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극 '아트'… ‘다른 인생’ 세친구의 우정과 갈등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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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의 우정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연극 ‘아트’. 사진제공 루트윈
세 친구의 우정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연극 ‘아트’. 사진제공 루트윈

최근 좀 잘 나가는 친구가 1억2000만원을 주고 그림 한 점을 샀다면, 게다가 그 그림이 하얀 바탕에 하얀 줄 몇 개를 그어놓은 이른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작품이라면?

“미친 놈!”

“이게 그림이냐?”

“돈이 썩어 나는구나!”

“그런데…, 이 그림 어떻게 보는 거냐?”

“하하하!”

반응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이런 사건이 친구들 사이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

죽마고우인 변호사 홍승기, 영화제작자 백종학, 문구도매상 박희순. 최근 잘 나가고 있는 종학이 이런 그림을 샀다며 보여주자 세 친구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예술합네’ 하고 돈 자랑하는 거야.”

“너의 유치한 대중적 취향으로 남의 예술까지 재단하지 마.”

“멋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냐?”

서로의 감성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한 마디부터, 우정에 금이 갈까 감정을 억누르는 긴장, 마침내 하지 않아도 좋을 안 좋을 속내의 토로, 때로는 주먹이 오갈 것 같은 거친 몸짓까지.

갈등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우정을 ‘그깟’ 그림 한 점 때문에 금가게 하는 위험스런 사건일 수도 있지만, 오히혀 ‘우정’이란 이름하에 그 동안 덮어왔던 감정을 끄집어내서 정화시키는 카타르시스가 될 수도 있다. 이 연극의 제목은 ‘예술(Art)’이지만 여기서 예술의 역할은 우정의 ‘정화(淨化)’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을 법한 이 이야기를 무대에서 풀어내는 관건은 그 뻔한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게 만드냐는 것.

최대한 실제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등장인물 모두가 실명을 썼다. 변호사 역의 홍승기는 실제로 변호사이고 영화제작자 역의 백종학은 영화배우 겸 프로듀서다. 문구도매상 역의 박희순만이 12년 경력의 연극배우 겸 영화배우다. 또한 대사 속에서는 관객들이 익히 아는 사람과 음식점 이름들이 등장해 무대와 현실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연극무대에 처음인 홍승기의 발음은 매끄럽지 못하고 백종학 역시 부자연스런 표정이 틈틈이 드러나지만, 연출가 이지나씨는 오히려 “제발 연기하지 말라”고 성화를 부렸단다. 이런 것은 극의 사실성을 드러내는 데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신 정 많고 우유부단한 캐릭터를 풀어내는 박희순의 넉살좋고 빼어난 연기가 이들 둘의 어색함을 부드럽게 만들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남자’들의 우정과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80분 동안간의 격렬한 수다와 몸짓을 보며 줄곧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은 ‘나’와 친구들의 ‘우정’에 대한 깊은 반성이었다.

그런데, 원작자인 프랑스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와 연출자는 둘 다 여자다.

23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 7시, 일 오후 3시 6시(월 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02-516-1501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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