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그 사람]‘안뽕’ 시인 김용택

  • 입력 2002년 12월 8일 17시 39분


내 친구 안뽕 김용택 시인 까만 학생복과 까만 모자를 쓴 까마귀떼 같은 중고교 1200명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긴장하고 있었다. 때는 1960년대 초 3월2일이었고, 교장선생님의 이임 부임 인사가 동시에 이뤄지는 마당이었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교로 가는 교장선생님의 이임 인사가 막 끝나고 새 교장선생님이 근엄하고도 엄숙한 걸음걸이로 연단을 올라가 우리들을 향해 반듯하게 섰다. 연대장이 학생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연대 열중 쉬어! 차려!” 그리고 나서 “교장선생님께 경례!” 해야 할 그 찰나였다. 학생들이 새로 온 교장선생님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려 부칠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긴장된 순간 어디선가 커다랗게 ‘빵’ 하며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나, 연단에 서 있던 새로 부임하는 교장선생님이나, 우리 모두는 그때의 그 소리를 모두 ‘벼락 때리는 소리’로 들었다. 사람들이 순간 ‘뚱’하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 소리의 진원지가 어디고, 그 소리가 무슨 소린가 깨달아가게 되었다. 그 소리는 우리 줄의 중간쯤에 있는 안용덕이라는 친구의 방귀소리(!)였던 것이다.

용덕이의 근처부터 퍼지기 시작한 웃음소리는 금방 전교생으로 번지고 우리를 향해 나란히 서 있던 선생님들도 소리 없이 웃고들 계셨다. 단 한 사람, 훈육주임 선생님의 얼굴만 이지러지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긴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식후 교무실로 불려가 뺨을 뿌옇게 맞고 돌아 온 용덕이의 입에서는 공자님 말씀과 비슷한 명언이 나왔다. “방귀는 학문의 트림이요 자연의 법칙이니, 이를 비웃고 개지랄 방정을 떠는 놈은 비군자(非君子)니라.”

고향인 전북 순창군에서 택시 운전기사를 해온 용덕이의 별명은 그 뒤 요지부동 ‘안뽕’이다.

김경미기자 couple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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