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임계순/우리가 바라는 대통령 부인은

  • 입력 2002년 11월 24일 19시 48분


세계사를 살펴보면 훌륭한 지도자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나 아내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12월19일 우리가 뽑을 대통령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대통령 자신의 역량과 국내외 정세뿐 아니라 대통령 부인에게도 달려 있다.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의 지위는 본인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라기보다 남편의 당선으로 주어진 것이므로 어떠한 권한이나 책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정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과 대처능력 등이 요구된다. 만약 대통령 부인의 인품이 고매하고 능력이 뛰어나면, 훌륭한 외교관으로서 국위를 선양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조언과 비판을 할 수 있으며 국민의 정서와 소망을 어루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적(私的)인 이해관계가 앞서는 우리 현실에서는 아무리 대통령 부인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공식 혹은 비공식 조직을 갖고 활동한다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들을 포함한 친인척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그들이 공식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왜곡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대통령 부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 부인은 대통령의 안식처가 되어 그의 불평과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의논 상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아가 중요정책에 대한 정확한 정세파악을 토대로 대통령에게 충고나 조언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 경우 나라와 국민을 위해 공명정대해야 하고 사적인 이익은 배제해야 하며 감정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대통령 부인은 공식적인 의사결정을 번복하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 훌륭한 정치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 당(唐) 태종(太宗·598∼649)의 장손(長孫)황후는 태종이 그녀와 국사를 의논하려 하면 아녀자가 정치에 간여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며 피했다. 당시 황후의 오빠 장손무기(長孫無忌)는 태종의 오랜 친구로 황제등극에 공을 세운 공신이었다. 그러나 태종이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려 하자 황후는 “제가 황은(皇恩)을 입어 그 귀함이 이미 극에 이르렀는데 형제와 조카들까지 조정의 관료가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며 반대했다. 태종은 할 수 없이 그를 실권이 없는 황제의 고문직에 임명했다.

태종의 딸 장락(長樂)공주가 출가할 때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魏徵·580∼643)이 혼수품이 지나치게 많다고 간언하자, 태종은 기분이 나빠서 황후에게 불평했다. 그러나 황후는 “일찍이 폐하가 위징을 중용한 까닭을 몰랐는데 오늘 들어보니 그는 의(義)로 주인을 섬기는 진정한 충신”이라며 칭찬했다. 황후는 친인척의 발호를 미연에 방지했고 간언하는 신하를 보호해주는 공명정대한 조언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당 태종이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국민이 바라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과 활동은 다르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대통령의 부인은 선출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는 남편의 권력을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임계순 한양대 교수·중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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