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책 선물하는 CEO

  • 입력 2002년 10월 27일 17시 40분


롯데백화점 유성규 본점장님을 만났더니 ‘우동 한 그릇’이란 책을 선물로 주시더군요. 방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10여 년째 선물한다면서요. 짧아 읽기에 부담 없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 책을 펼쳤습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 차창 밖을 보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고…. 생각 없이 펼쳤던 이 책 덕분에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 책은 섣달 그믐날 밤, 가난한 일본 모자(母子)의 이야기입니다. 우동 한 그릇으로 한해의 노고를 마무리하는 모자의 따뜻한 사랑, 그리고 우동 집 주인의 드러나지 않는 ‘배려’를 담담하게 쓴 글이죠.

사고로 숨진 남편을 대신해 ‘보상금’을 갚아야 하는 어머니의 헌신과 그 사정을 말없이 이해하면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 나서는 어린 두 아들, 이 가운데 피어나는 상호간의 신뢰….

이들에게 섣달 그믐날 밤 우동 집 ‘북해정’에서 한 그릇을 시켜 세 명이 함께 먹는 우동은 고단한 한해를 마무리하는 조촐하지만 소중한 의식이었습니다. 내년에도 온 가족이 이 우동 한 그릇을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우동 집 주인은 1인분을 시켰어도 1인분 반을, 그 다음해 2인분을 시켰을 때 3인분을 삶았죠. 행여 알아차려서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눈치채지 못할 만큼 더 주는 ‘배려’를 담았습니다.

옮긴 글에서 일본 신문의 서평(書評)을 인용해 ‘울지 않고 배길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라도 한번 읽어 보라’는 글이 실렸더군요.

유 점장님은 이 책이 나온 89년 이래 지금껏 한 1000여 권 넘게 이 책을 선물로 주고 계셨습니다. “서비스업에 있는 이들은 우동 집 주인 같은 마음가짐이 있어야한다”면서 말이죠.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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